수업하는 아이들 중 세명이 그만두게 되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중1 때부터 수업을 했던 아이들인데 중3을 앞두고 있으니 2년 가까이 디베이트 수업을 받았다. 게다가 공부를 꽤 하는 아이들이라 예비중 3이 되면 학원 스케줄이 빡세질 테고 주말에도 학원을 가게 될 터였다. '올해까지만 하게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이 11월이라는 걸.
앞으로 세 번의 수업만 더 하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애써 담담한 척하며 그중 첫 번째 수업을 했다. 늘 시크하고 담담해하던 여자 아이 하나는 내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너.... 설마 우니?"라는 내 말에
"아... 우는 것 까지는 아닌데, 제가 좀... 이별에 취약한 성격이라서요..."라고 했다. 줌 화면 너머의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헤어지는 건 선생님도 아쉽지만, 이별은 예정되어 있던 거였고 그 시간이 다가온 거에 불과해. 그러니 우리 마지막 시간까지 하던 대로 하자. 마지막 시간은 줌 대신 직접 만나 수업하기로 하고~
그리고 너희들에게 한 가지 꼭 말해줄 것이 있는데.... 선생님이 지금까지 디베이트를 가르치면서, 한 달 전부터 그만둘 것을 예고해 준 분들이 많지 않거든. 그만두게 되면 미리 말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주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 당일 수업 시작 직전에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런데 너희 어머니들이 한 달 전에 말씀 주셔서 너무 고마웠어. 남은 시간을 좀 더 알차고 의미 있게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잖아. 그걸 너희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더라. '아... 우리 엄마가 괜찮은 분이구나...' 생각하면 좋겠다."
아이들은 놀란 토끼눈을 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우리 엄마가?'라고 생각하는 듯...
국, 영, 수 학원 시간을 쪼개거나 포기하고 '디베이트'라는 생소한 영역을 선택한 부모님들은 참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 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나의 신념을 신뢰하고 아이를 2년 가까이 맡겨주신 것도 대단하다. 시험 점수로 눈에 띄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닌데도 "아이가 변했어요~"라고 말씀하실 때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만두실 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준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시간을 주신 것.
공교롭게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들 모두가 중2다. 간혹 중3 때까지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한껏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떠나면 난 뭘 해야 할까. 사라지는 아이만큼 줄어드는 수입이 걱정되기에 앞서 늘어나는 시간이 고민이었다. 두 시간의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그 두 시간을 위해 준비하던 몇 배의 시간까지 몽땅 비어버리는 것 아닌가.
우울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당신은 그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잖아.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자원봉사로 디베이트를 가르치는 일말이야."
울컥....
동요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크게 내질렀다.
"그러면 뭐해~ 돈을 못 벌잖아~"
난...
돈도 잘 버는 동시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힘들 수도 있겠다 싶다.
난...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된 페이를 받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무상으로 교육하고 싶었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난...
대단한 일을 하면서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힘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