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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8. 2021

수험생들에게 덕을 나누어드립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아이들을 마주한 이야기, 마치 교육자원봉사가 꿈길을 걷는 듯 낭만적인 일인 것처럼 글을 쓴 것이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내 입방정 아니 글방정을 후회하고 말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꼭 그랬다. 

"우리 애는 감기도 한번 안 걸리고 너무 건강해요~"라고 말하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꼭 크게 앓곤 했다. 그제야 엄마의 입놀림을 후회하고 차츰 좋은 일일수록 입 밖으로 내는 일을 삼가게 됐다. 


교육자원봉사에 있어서도 그래야 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이뻐요~ 그렇게 열심히 해줄 수가 없어요. 너무 고마울 따름이지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런 말도 못 하나? 보석 같은 아이들을 보석 같다고 말했을 뿐인데...


- 의자를 앞뒤로 달그락달그락, 깔딱거린다.

- 작은 손난로를 머리 위로 던졌다 받기를 계속한다.

- 의자를 뒤로 향하게 돌려놓고 뒤에 앉은 아이만 바라보며 떠든다.

- 자인지 무엇인지 모를 물건을 책상 모서리에 대고 계속 구부린다.

- 앞에서 발언하는 아이를 향해 "그래서요?" "어쩌라고요?"라고 대꾸한다.

- 시도 때도 없이 "히히히히~"라며 큰소리로 웃는다.

- 담요를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있다. 

- 근거가 뭐냐는 상대팀의 질문에 "찍었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코카콜라 했더니 나왔어요."라고 말하며 키득 거린다. 


이 모든 번잡스러움은 각기 다른 아이들의 행동이었다. 한 반에 24명인데 5명이나 결석을 한 상태였으니 반 정도 되는 학생들이 위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던 거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함께 계셨는데도 말이다. 교실 뒤편에 앉아 계시던 담임 선생님은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으로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정말 미안해요...'


'지난주에 그렇게 몰입을 하던 아이들이 맞나? 내가 반을 잘못 찾아왔나? 일주일 동안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여러분, 경청해주세요~"

"여러분, 친구가 말할 때 잘 들어줘야 자신이 말할 때도 잘 들어주는 친구의 태도를 기대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조금만 진지하게 임해주세요~ "

"여러분~~~~~~"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아... 집에 가고 싶었다. 

코로나로 35분 단축 수업이라 늘 시간에 쫓겼는데, 오늘의 35분은 왜 이리 기다냐... 

아... 도망치고 싶었다. 

교육자원봉사센터로 '뭐 그런 선생님이 다 있냐. 수업하다 말고 도망갔다.'라는 전화가 가도 상관없으니 그냥 튈까, 생각했다. 

눈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웃음을 연기했지만 마스크 속으로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스크가 붉은 피로 물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를 너무 악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만큼이나 이를 악물고 열심히 디베이트를 해주던 몇몇 친구들 덕분에 두 시간을 채우고 수업을 마쳤다. 옆에서 흔들어대는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며 그들은 나를 도왔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한 아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애들이... 아 진짜 오늘 왜 그러나 몰라요. 근데 저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젠 안 오시는 거예요?"

담임 선생님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선생님... 너무 애쓰셨어요... 저희가 이래요. 진짜, 너무 죄송하고,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에요. 즐거웠어요."라고 했던가?

"별말씀을..."이라고 했던가...

흑화된 아이들을 피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교육자원봉사를 다니는 일은,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항상 행복하고 항상 보람차지만도 않다. 그래서 이따금씩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떠올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 되뇐다. 

'난 지금을 덕을 쌓는 중이다.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덕을 쌓는 중이다. 그러니 이 정도의 어려움쯤은 참아내자. 다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이기적인 이유라도 끌고 와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이 있는 것이다. 


신기한 건, 시간이 지나면 그 장면들이 모두 희석되고 좋았던 것, 보람 있었던 것들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교육자원봉사를 하러 길을 나서게 되는 이상한 현상... 


어쨌든 난 또 덕을 쌓고 왔다. 

어제 쌓은 덕은, 오늘 수능을 보는 이 땅의 모든 수험생을 위해 나누어주련다.

어제 하루만으로도 그 정도의 덕은 충분히 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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