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네 집이 인테리어 공사를 한 것은 처음이다.
얼마 전 이사 간 앞집까지 가세를 하면서 소음과 진동은 임계치를 넘어섰다. 절묘한 시점에 자원봉사가 시작되어 집을 나설 수 있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후 늦게 집에 들어온다면 웬만한 소음은 비켜갈 수 있을 터였다.
마침, 지인들 톡방에 기사 하나가 공유됐다.
'수능에 응시할 단지 내 수험생들을 위해 11월 1일~18일까지 모든 공사를 한시적으로 중지합니다.'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강남 아파트 게시판 곳곳에 걸렸다는 기사였다. 이 때문에 주변 인테리어 업체들에 불똥이 튀었으며 공사로 인한 민원도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 일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 11월 말에도 같은 내용의 안내문이 걸린 것을 보았다. 2019년에도, 그 전에도 그런 안내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작년에 걸린 안내문을 보고 너무 신기해서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수능 일주일 전부터 등교를 중단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는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조치였으니 이전에는 없었을지 모르겠으나, 처음 맞닥뜨린 등교 중단에도 발 빠르게 대처하는 강남 아파트의 클라스를 실감했다. 이래서 강남, 강남 하나보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용인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는 이에 아랑곳 않고 한꺼번에 네 집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번 주부터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다. 소음이 가장 심한 날이 이번 주에 모두 몰려있다. 우리 라인에는 재수생이 한 명 있고 옆라인의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다. 상황이 이러한데, 아무 생각 없이 인테리어 동의서에 네 번이나 사인을 한 나다.
그렇다고 안 해줄 재간도 없었다. 거주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그 가운데 공사해야 하는 각자의 사정이 있을 텐데 수험생들에게 시끄럽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마뜩잖기는 하다.
봉사를 끝내고 들어와도 여전히 시끄러워 핑계를 만들어 계속 집에서 나갔다. 아들에게 쓴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도 가고, 동네 지인들과 커피도 마시고, 도서관도 어슬렁거렸다.
시끄러워서 짐을 싸 일단 나간다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내년에는 동의서 사인하지 말아야겠다."
"왜?"
"내년엔 우리 집에도 수험생이 있잖아!"
"아..."
"이런 데서 교육격차가 발생하는 거야. 입시를 대하는 주민들의 마음가짐이나 각오가 다른 거지."
집의 편안함을 공부 밑천으로 삼는 작은 아이는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는 걸 힘들어한다. 꼼짝없이 집에서 수능을 맞이할 텐데, 지금 내가 느끼는 만큼의 진동과 소음이라면 몸만 덜덜 떨리는 게 아니라 멘털에도 큰 균열이 생길 것 같다.
그럼에도 내년 이맘때쯤 동의서를 내미는 이에게, 우리 집엔 수험생이 있어서 반대하겠노라는 말이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 큰일이다...
내년에는, 수능 전날까지 학교에 등교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나저나.... 이제 짐싸서 나가야겠다... 이까지 덜덜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