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Nov 25. 2021

때를 놓친 선함...

지역 맘카페가 온종일 시끄러웠다.

16년 전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오며 가입했던 카페가 이 정도로 시끌벅적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맘카페의 소동은 일파만파 퍼져 모일간지에 실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미담이었다.


부부가 경영하던 동네 마트가 있었는데 몇 달 전 아내가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요양병원에 가게 되었고 남편이 혼자 마트를 운영했다. 생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집에 혼자 있던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정서적인 문제가 생겼고, 남편은 아이를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에 폐업을 결정했다. 마침 지근거리에 또 다른 마트가 생겨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도 이유였다.

11월 말 폐업 전까지 반품이 불가한 상품을 비롯한 가게 물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정리했으면 한다는 남편의 소망이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맘카페에까지 알려졌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소식이 전해진지 만 하루도 안 되어 가게의 매대가 텅텅 비기 시작한 것이다.


맘카페에는 1분 간격으로 돈쭐을 내준 인증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구입 후기들이 쏟아졌다.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텅텅 빈 매대, 자신이 구입한 물건 사진이 올라왔다. 어떤 이는 구입한 물건들을 기부하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내려주거나 계산을 하면서 불쑥불쑥 훌쩍이신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도 올라왔다. 2만 원 이상 구매 시 10% 할인을 해주겠다는 사장님의 호의도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폐업을 앞둔 가게를 도와주고 있었으며 타인의 아픔과 시련에 공감하고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우리 동네에 이런 따뜻한 사람이 많다는 게 자랑스럽다, 선한 영향력을 제대로 실감 중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좋아 눈물이 난다...'


그랬다. 나 역시 위와 같은 생각을 했고 어느 순간에는 눈물을 흘렸으며 이제나 저제나 마트에 가볼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마음속에 있던 불편함 한 자락을 마주했다. 이 상황이 마냥 감동적이지만은 않다는 불편함...


분명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선하다. 마음이 선하니 행동도 선했을게다.

그 선한 마음이 퍼져 많은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으니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쓰는 게 맞는 상황이다. 그런데,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은 그 행동이 불편하다.

내가 마트 사장이라면, 분명 고맙고 분명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감동받겠지만 어딘가 씁쓸한 마음도 있을 것 같다. 왜 좀 더 일찍 가게를 찾아주지 않았는지, 왜 이제야 돈쭐을 내준다며 찾아주는 건지 말이다.


가게가 위치한 곳은 대학교 앞 대로였지만 차 댈 곳도 마땅치 않고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도 없다. 차로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그 가게는 나도 두어 번 이용했을 뿐이다. 그것도 바로 옆에 있는 유명한 족발집에 들렀다가 소주가 필요했던 때뿐이었다. 유동인구도 전무한 길이며 코로나로 대학생들마저 학교 앞에 살지 않으니 아마 하루 매출은 동네 편의점만도 못했을지 모른다.

가게를 운영하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넓은 평수에 물건은 들어찼지만 시원하게 비는 법은 없었을 것이다. 구색에 맞춰 신선과일과 채소도 들였지만 폐기되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고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없이 병든 아내와 마음이 아픈 아이를 걱정하던 날들... 그때 손님들은 다 어디서 장을 보고 있었던 걸까...


물론 현실의 사장님은 나와는 달라 그저 고마운 마음만 가득하실지 모르겠으나, 나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너무 삐뚤어진 사람일지도 모르겠고 세상에 남아 있는 온정을 지연된 정의라며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 있다. 다만 머릿속에 몇 년 전 폐업을 하던 집 앞 마트 계산 아주머니의 따끔한 한마디가 이 심란함의 이유다.

"마트가 닫는다니 너무 아쉬워요."라는 말에 아주머니는 싸늘하게 한마디 하셨다.

"그렇게 아쉬우면 영업을 할 때 많이들 찾지 그랬어요. 평소에는 오지도 않다가 문 닫는다니까 왜 다들 아쉽다는 건지 원..."


오늘도 집 앞에는 대형 마트에서 배송된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 물건을 넘어서 폐업을 앞둔 동네 마트를 향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돈쭐을 내주고 왔다며 쇼핑한 물건들을 늘어뜨리고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것으로 나의 미안함과 죄책감을 씻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동네 마트를 찾지 않는 나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은 그저 때를 놓친 자의 이기심처럼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마지막에 작은 도움을 주는 게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불편하냐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복잡하게 머리 굴릴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팔아주라며 자신을 나무랐다. 폐업은 기정사실이니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손해보지 않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않겠는가... 나의 이런 지저분한 고민이 더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내일 아침 장바구니를 들고 그 마트에 가볼지도 모르겠다.

비어있는 매대 사이사이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담아 계산을 하며 사장님의 얼굴을 내 머릿속에 각인시키고는 그의 삶을 위해 잠시 기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마을 주민들이 동참하며 '작은 기적'이라고 부르는 그 일에 나도 숟가락 하나 얹고는 어디 가서 아는 척, 함께 한 척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1월 말.

마트가 문을 닫으면 사람들은 다시 저렴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테고 마을 어딘가의 또 다른 작은 마트는 여전히 시름시름 앓고 있을 것이 벌써부터 안타깝고 씁쓸하다...

동네 마트의 어려움을 알면서 행동하지 않고 폐업 전과 후 어느 때에도 도움주기를 주저하는 나는... 비겁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서를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