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고, 나쁜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터이니."
악처의 대명사인 '크산티페'를 아내로 두었던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악처'를 검색하니, '세계 3대 악처, 5대 악처' 하며 줄줄이 명단이 올라온다. 유명인의 아내 중에 악처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결과만 두고 봤을 때, 아내의 비정한 패악질이 남편을 깨어있게 하고 움직이게 해 결국 성공에 이르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 또 한 사람의 일화가 있다.
대학생 때 서둘러 한 결혼으로 30대 초반의 나이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부의 이야기다. 결혼 후 힘겹게 대학을 졸업한 둘은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다. 아이 둘을 낳고 육아와 가사를 나누는 맞벌이 생활을 수년째 이어왔다. 칼 같은 아내의 성격 탓에 남편은 집에서도 게으름을 피우기 힘들었다. 그래도 잘 살았다.
그러던 남편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노라 선언했다. 현재 하는 일이 사향 산업이라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기약 없는 공부가 되리라 짐작해 아내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
"앞으로 남은 기간인 8개월 안에 공부를 끝내! 첫 시험에 붙으라는 이야기야. 시험에 떨어지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아! 그리고! 시험 준비한다는 핑계로 육아와 가사에 소홀히 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
남편은 첫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고 이는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위가 되어 장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며 성적이 좋아 집 근처로 발령이 나 육아와 가사에 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후일담까지...
이쯤에서 나를 돌아봐야 할 테다.
3년째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남편과 함께 공부하는 어떤 이는 3년째 아내가 학원과 스터디 장소로 픽업을 해준다고 했다. 남편에게 부럽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아침이라도 든든히 먹여야 하나 싶지만 속이 더부룩하다 어쩌다 하며 남편은 요리조리 피한다. 가끔 수프나 토마토를 싸주는 것으로 내 죄책감을 덜어낸다. 스터디 카페에 갔다가 10시 넘어 귀가하는 남편을 위해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하고는 하지만 뚜껑만 여닫다가 이내 들어가 잠을 청하는 남편이다.
엄청난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달복달하며 남편을 못살게 하지도 않는다. 어정쩡한 아내 때문에 남편 역시 어정쩡하게 3년째 저러고 있는가 싶다.
"올해도 떨어지면 집어치워! 그만해!"
모처럼 모진 말을 뱉었으나 남편은 허허실실 웃기만 한다.
어라? 이 대목에서 저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이보다 더한 말은 준비 못했는데? 아내의 악담에 의기소침해져서 어두운 낯빛으로 가방 짊어지고 공부하러 나가야 하는 스토리인데? 그래야 합격할 텐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