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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27. 202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발!

작은 아이의 자가격리가 끝났다.

아이는 선명한 한 줄에 비해 턱없이 희미한 한 줄 따위는 과감히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3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결국 확진과 자가격리를 받아들였고 스스로를 방 속에 가두었다.


진단키트에서 음성이 나온 아이의 엄마 아빠는 안도했다.

걸리더라도 엄마 아빠에게서 감염되는 것만은 막으려고 노심초사하던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이었지만 그랬다. 어차피 걸릴 거라면 우리 때문은 아니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나는 최소한의, 불가피한 외출만 했다. 이제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살얼음판에서는 벗어난 셈이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먼저 자가격리를 경험한 지인들 중에는 다른 가족의 감염을 막기 위해 확진 가족의 격리를 철저히 지킨 경우가 많았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격리 시 사회생활에 지장이 큰 가족을 위한 조치들이었다.

- 격리자를 위한 식기를 모두 일회용으로 사용하기.

- 쓰레기는 격리자 방에 있는 봉투에만 모으기.

- 격리자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만질 때는 일회용 장갑 사용하기.

- 격리자의 방과 화장실이 있는 복도 벽면을 따라 큰 비닐을 붙여 완벽하게 차단하기.


우리 가족은 이렇게 하지 못했다.

아이는 스스로를 방에 잘 가두었다. 답답하면 거실에 나와 있으라고 말해도 철저히 방과 화장실만 오갔다. 그게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느슨한 격리를 선택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걸려도 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한 까닭이다. 피하는 것이 최선이기는 하나 아이를 바이러스 취급하고 멀리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매끼 밥상을 따로 차려 방에 넣어주고 반납된 식기를 소독하는 것까지만 했다. 퇴근한 남편은 아이의 방문을 열어 잠깐 동안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물, 간식을 전하느라 수시로 아이방을 들락거렸다. 대신 나는 아이와 함께 나 역시 집에 격리시켰다.


중요한 면접이 있던 지난 월요일 잠깐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현관 밖을 나서지 않았다. 아침에 기척 없이 배달 온 택배는 늦은 밤 남편의 손에 들려 집으로 들어왔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은 창문 넘어 풍경으로 확인했으며 봄내음은 환기하면서 맡았다. 아이는 종일 책상과 침대에서, 나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보냈다. 재난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수백일이라도 지하벙커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해. 특히 우리 집 식구들은 그래야 살아."

몇 달 전 큰 시누이가 해주신 말씀이다.

시누이뿐 아니라 남편, 시어머니 모두 그렇다. 집에 있는 걸 못 견뎌한다. 집 앞 산책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평생을 일요일에도 나가셨고 지금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신다. 어머니는 운동삼아 동네 대형마트 세 곳을 매일 돌아다니신다. 하루도 집에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이들이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큰 아이도 집에 있을 땐 좀이 쑤셔 힘들어했다. 슬리퍼 신고 빈 가방이라도 멘 채 집을 나섰다.

그러니, 나와 작은 아이는 이 두 집안 사이의 돌연변이임이 분명하다.


격리가 해제된 다음날 아이의 학원을 데려다주는 길, 모처럼 잠깐의 외출을 했다. 며칠 동안 세워두었던 자동차의 시동 걱정을 해야 했다.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들르고 멈춘 손목시계에 밥 주러 대형마트에도 잠깐 들렀다. 걷다가 운전하다가, 창문을 내렸다가 창밖을 보다가... 그렇게 움직이면서 무언가 느껴졌다.

상쾌함. 가벼움. 생기. 기쁨.

어쩌면 난 고립을 즐기고 있던 게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격리기간 내내 몸은 서서히 가라앉고 정신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몸이 굳고 정신이 가라앉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2년 남짓 움직임이 제한됐던 시간을 겪은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래서 고립되기보다는 함께 어울리다 감염되는 쪽을 선택한 것 아닐까. 살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은, 땅을 밟고 길을 걷고 공기를 마시고 나뭇잎의 움직임을 느끼고 때로는 낯선 이와의 짧은 대화를 해야 한다. 창을 통하지 않은 햇빛을 맞아야 하고 방충망을 통과하지 않은 바람을 쐐야 한다. '얼마예요?' '실례합니다.'같은 단발성 대화를 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아침마다 신발을 신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지난 해 봄 사진. 올해도 슬슬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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