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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7. 2021

초심을 잃을 수 없는 일

오늘로 올 한 해의 교육자원봉사 활동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 어느 해보다도 후련하고 동시에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다. 끝나서 홀가분하다고 좋아하며 집에 왔는데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올해는 팀을 이룬 첫해였다. 혼자 할 때보다 더 쉽고 더 여유로울 줄 알았던 게 사실이다.

실상은? 더 힘들었고 훨씬 고민이 많이 생겼다. 그렇다고 때려치워야겠다거나 역시 혼자 하는 게 편하다고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 교육자원봉사의 보람, 함께 하는 봉사의 이로움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디베이트, 그 어려움에 대하여...

토론은 어렵다.

남들 앞에 나서서 준비한 것만 말하기도 어려운데 거기에 논리와 순발력까지 갖추기는 더더욱 힘들다. 일회성 수업을 통해 디베이트 수업이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학생 개개인 모두에게 전할 수는 없다. 겨우 맛보기 수준에 불과한, 스치듯 지나가는 수업에서 아이들이 성취해야 하는 정도를 정하기는 더 힘들다.

우리 팀의 입장을 논리 정연하게 밝히기, 상대팀의 주장 경청하기, 날카롭게 질문하기,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쟁점을 파악하기...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된다면 성공한 수업이다.


디베이트 형식만이라도 제대로 알게 하려면 주제라도 쉬워야 하는데, 올해 봉사는 그 지점에서 실패했다. 코로나 19 종식과 기본소득제라니... 어려운 형식에 어려운 주제를 더하니 총체적 난국일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업을 함께 해준 아이들에게 매 시간 감사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팀을 이뤄 함께하는 첫 봉사라 잔뜩 힘을 준 것이 패착이었다.

< 노키즈존은 필요하다>  < 게임중독은 질병이다> 등 혼자 봉사할 때 다뤘던 주제 앞에서 아이들은 디베이트를 편하게 받아들였다. 말하면서도 신나 했다. 아이들에게도 직접적인 현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혼자 수업할 때보다는 좀 더 무게 있고 폼나는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게 있었나 보다.


중간중간 문제를 파악하고 함께 논의할 팀이 있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주제를 바꾸기는 늦었지만 아이들에게 조금은 쉽게 설명하고 접근할 방법들을 꾸준히 논의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좀 더 쉽고 재미있는 주제로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 봉사, 그 의미와 재미에 대하여...

봉사는 힘들다.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재적 동기가 충만해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재적인 동기는 결국 재미와 의미의 깊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대가도 없는 일에 시간을 들이는데 재미도 없고 별 의미도 없다면 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올 한 해는 함께 하는 봉사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혼자 봉사를 다니던 때, 봉사는 버려지던 오전 시간을 충만하게 해 준다는 의미를 내게 선사했다. 아이들과 만나 수업을 하는 게 꽤 즐거운 일이었으며 디베이트 수업을 좋아해 주는 아이들을 만나면 덩달아 신이 났다.

함께 봉사를 다닌 올해,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의미 있도록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 얼마만큼 재미있는 시간인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다. 교육자원봉사를 함께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준비과정부터 수업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이 어떻게 남겨졌을지까지를 생각해야 했다. 그들에게도 가치 있는 경험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한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만 가치로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던 소중한 한 해였다.



오늘 마지막 수업을 함께 한 봉사 선생님께서 내게 물었다.

"그렇게 수업 경험이 많으신데 아직도 고민이 많으세요?"

학교 선생님들에 비하면 수업 경험이 뭐 그리 많겠는가. 부족한 경험에 기인한 고민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수업하는 중에도 고민이 많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아이에게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 하는지, 이런 말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건 아닌지, 모두가 즐거운지...


다행히 이런 고민이 지겹거나 힘들지 않다. 교육자원봉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의 경험을 주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너리즘에 빠질 겨를도 없고 초심을 절대 잃을 수 없는 일이 내가 아는 교육자원봉사다.

함께 고민할 팀까지 생겼으니 더더욱 고민의 질과 양이 풍성해지리라 생각된다.


내년이 더욱 기대되는...

나는 교자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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