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안녕(첫 휴가)

전역까지 D-375

by 늘봄유정

아들아.

휴가를 나왔지만 첫날밤부터 집에 없으니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어색하지 않구나... 하하...


7월 19일에 입대했으니, 173일 만에 나오는 첫 휴가였다.

휴가 전날 "휴가 준비 이상무?"라고 묻는 엄마의 문자에 "순조롭지~"라고 답하던 네 한마디에는 콧노래가 저절로 따라붙는 것 같더라.

휴가 당일 아침 "좋아?"라고 물으니 "젛아~"라고 답한 네 문자에는, 좋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입을 크게 벌리고 "조~~~~ 어~~~~ 아~~"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뿍 담겨있더라.


우리의 접선지는 독립기념관이었지.

휴가 중인 국군 병사가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면 다음 휴가 때 하루의 휴가를 보상으로 주는 제도가 있다며 기어이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겠다고 했지. 우리 식구는 네가 관람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 입구에서 너를 기다렸다. 삼삼오오 멀리서 걸어오는 국군들이 더러 보일 때마다 아빠는 "호잰가?"라며 엄마를 쳐다봤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니! 우리 호재 걸음걸이가 아니야!"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지.


멀리서 혼자 뚜벅뚜벅 걸어오는 한 청년이 보이더라. 건장한 체구에 커다란 배낭을 멘 것은 다른 군인들과 다를 게 없었지만 엄마는 단박에 알아봤지.

"호재~~~~"라고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 너는 엄마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래. 너였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간단한 포옹을 했고, 함께 집으로 향했고, 집에 오는 내내 이야기를 나눴고, 너는 나갔지.

"내일 봐요~"라는 말만 남기고...

스치듯 안녕...


너를 주려고 전날 재워두었던 LA갈비는 아빠와 동생이 먼저 맛보았다.

너를 따숩게 재우려고 전날부터 올려두었던 방 보일러는 다시 살짝 내려두었다.

분명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오기는 나왔는데 우리의 일상에는 변화가 없구나.

여전히 우리 셋이 밥을 먹고, 우리 셋이 대화를 하고, 우리 셋이 자야 하는구나.


그래도, 엄마는 좋다.

현관에 벗어놓은 네 군화만 봐도 좋고, 어지럽게 물건이 늘어진 네 방을 다시 보는 게 좋다.

벗어놓은 옷을 만지기만 했는데도 좋고,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너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좋다.


열린 가방 속에서 슬쩍 보인 노트가 궁금해 물었더니 너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설명을 해주었지.

훈련소에서부터 시작해 자대에 들어가서 교육받은 내용과 인연을 맺은 이들의 이름, 군가 등이 꼼꼼하게 적힌 노트였지.

첫 장을 넘겼을 때 보였던 익숙한 문구.

"삶이란 신기하게도, 힘들면서도 즐겁고 고생스러우면서도 의미 있다."

엄마가 보냈던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옮겨 적은 것이었지.

그 문장을 보며 엄마는 가슴이 뜨끈해졌단다.

멀리 떨어진 군대에 가 있어도, 휴가 나오자마자 친구 집에서 밤을 새우더라도, 이미 네 맘속에 엄마가 한 구석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고맙고 행복했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보다 휴가 나온 지금 네가 더 보고 싶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만, 괜찮다.

네 군화가 현관에 있고, 네 군복과 군모가 네 방에 있고, 이미 온 집안에 네가 가득 차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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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의 무서움 -

휴가 이튿날.

친구 만나러 나간 너의 방에 들어갔다가 낯선 풍경을 보았단다. 풀러 놓은 짐은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데 침대 위 이불은 곱단이 접혀 있더라.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그 기본적인 것도 가르치지 못한 엄마가 창피한 줄도 몰랐다. 그저, 반년 간의 군 생활이 너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는 것만 신기했지.


엄마는 당장 가족 톡방에 이불 사진을 올렸다.

낯설다
너란 남자
ㅍㅎㅎㅎ

네게서 당장 답이 왔지.

습관의 무서움


단 170여 일 동안 너는 사뭇 달라져있더구나.

자고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 말고도, 눈이 반짝반짝해졌으며 말에 힘이 느껴졌다. 군대에서 다양한 배경의 또래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삶을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으며 인생의 큰 꿈을 꾸게 되었노라 당차게 말했지. 아빠의 눈에는 그런 거창한 포부를 밝히는 모습조차 아직도 덜 큰 아이로 보이는 것 같더라. '에휴... 아직도 멀었네...'라는 아빠의 속엣말이 엄마 눈에는 보였지. 하지만 엄마의 눈에는 분명 입대 전과는 다른 너만 보였단다. 이제 갓 스물두 살이 된 너이지만 같은 시절의 엄마와 아빠보다 훨씬 깊고 넓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변한 줄 알았는데....

다음날부터 이불은 개어있지 않았고, 너는 여전히 친구와 술을 좋아했으며, 입대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더라. 그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이지 알았다.

습관의 무서움...


170일은 너를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단 하루 만에 이전으로 돌려놓을 만큼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아들의 입대와 전역을 경험한 엄마들이 한결같이 하던 "아들이 바뀐 것 같죠? 그거 딱 2주 가더라."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얘가 군대를 간 적이 있기는 한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너는 그대로였고 나의 그리움은 자취를 감췄다. 네 입대 전과 같이 집안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빨래는 늘었고 화장실은 지저분해졌다. 난 냉장고 가득 고기를 채워 넣고 있으며 식사 준비가 즐거워졌다. 모두가 익숙했던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기하지?


하지만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졌다.

나는 너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방치워라, 일찍 들어와라, 술 조금만 마셔라, 휴대폰 좀 그만 봐라'와 같은 말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란다. 일주일 후면 복귀할 아들에게 잔소리만 남은 휴가를 주고 싶지는 않아서지.

너는 가족의 일상을 깨뜨리지 않으려 조심한다. 늦은 밤 집에 친구를 데려와도 되겠냐고 물으면서 "OO 이에게 방해되지 않을까?"라고 고3 되는 동생을 걱정했지. 다시 낯선 남자의 향기가 전해졌지 뭐냐. 입대 전 8명의 친구를 데리고 와 밤새 시끌시끌했던 너는 없었다.


일주일 후면 다시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헤어질 사이임을 아는 우리는, 오래된 습관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변화를 맞이했구나.

네가 복귀하고 나면, 나는 그제야 알게 될 테지. 네 입대 전의 일상이 그리운지, 네가 입대한 후의 일상이 그리운지... 어떤 습관이 튀어나와 나를 흔들어놓을지 벌써부터 무섭다.



- 첫 휴가는 나쁘다! -

"집 가는 중이다. 이젠 부대가 집이지..."

친구와 통화하며 너는 그렇게 말했지.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자대로 돌아가는 길, 씁쓸함과 체념을 가득 담아 던진 네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입대할 때보다 더 가기 싫다며 부대를 향하는 내내 조용히 토해내던 네 한숨도 기억한다.


몇 번의 외박과 몇 번의 만취.

몇 번의 가족 식사와 몇 번의 대화를 끝으로 휴가는 끝났다.

널 보내는 아쉬움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못 먹어서 아쉬운 거 없어?"라는 질문으로밖에 표현이 안되었고, 집 떠나기 전 엄마 밥을 차려주는 것으로 내 몫의 아쉬움을 끝낸 줄 알았다.


긴 복귀 행렬에 서 있는 너를 보다가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오르더라.

'줬다가 뺏는 게 어딨어!'라며 혼잣말을 하다가 울고 말았다.

입대할 때는 애잔하기만 했는데 첫 휴가 끝은 처연하다.

어지럽고 지저분한 네 방을, 당분간은 정리하고 싶지 않구나.



집에 돌아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엄마 아빠 베개 위나 식탁 위에 < 부모님 전상서 > 같은 거라도 올려져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없더라.

과한 기대를 한 나 자신을 꾸짖었다.

그저, 건강히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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