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뭘 하고 있는가

전역까지 D-390

by 늘봄유정

아들아.

크리스마스이브다.

우리는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매해 크리스마스이브에 꼭 함께 저녁을 먹었지.

너희들은 '학원 그까짓 것!' 하면서 시원하게 학원을 제끼고, 아빠는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했지.

외국 사람도 아니면서 스테이크에 스파게티, 와인, 케이크를 준비하고는 괜히 건배를 하기도 했다.

더이상 산타를 기다리지 않는 나이가 됐지만 그날은 함께 축배를 들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쯤 되는 것처럼 외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지.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을 준비하는데, 접시며 커트러리며 세 개씩만 세팅을 하다가 문득 네 빈자리가 훅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무심한 듯 케이크 하나를 사들고 "나 왔슈~"라며 네가 들어올 것만 같았지.


세 식구가 막 저녁을 먹으려던 그때,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너는 한마디 톡만 남기고 사라졌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너에게도 오늘은, 특별했구나...

너도 오늘은...


...

며칠 전, 교육자원봉사 연말 총회가 있었단다.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활동한 마을교사가 한 자리에 모여 활동 소감을 나누고 내년에도 함께 행복하자고 안아주는 날이지.

< 2021년, 나에게 가장 기뻤던 일은? >

교육자원봉사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단다. 올 한 해 통틀어 가장 기뻤던 순간을 떠올리는 시간이었는데, 엄마는 올 한 해 가장 기뻤던 일을 이렇게 떠올렸단다.


"올 한 해 가장 기뻤던 일은, 군대 간 아들에게 처음으로 면회를 간 것이었어요. 넉 달만에 만나는 것이니 기쁜 건 당연한데, 그 기쁨이 더 크게 느껴진 건 아들과 헤어졌다는 극단의 슬픔이 있기때문 아닐까 생각했어요. 상대적으로 기쁨과 반가움이 배가 됐던 거죠."


올 한 해 가장 슬픈 일은 너와 헤어진 것이었단다.

올 한 해 가장 기뻤던 일은 너와 다시 만난 것이었지.

탯줄이 잘린 이후로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진 적 없던 우리였는데...

훈련소 시절의 완벽한 단절, 집에서 250km 떨어진 물리적 거리는 너를 더욱 강하게 내 맘속으로 끌고 들어왔단다.

그 양 극단의 슬픔과 기쁨이 있기에 엄마의 한 해는 가장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한 해가 되었고 가장 충만한 한 해가 되었구나.

그 어느 때 너와 내가 이만큼 가까웠다고 느꼈던 적이 있던가...

그 어느 때 엄마가 너를 이만큼 그리워한 적이 있던가...


그러니 아들아.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라며 상념에 빠져있을 아들아.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든 그 끝에는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행복과 기쁨이 있을 거란다.

허전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잠이 들겠지만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선물이 머리맡에 놓여있을게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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