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작은 아이와 같은 반인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작은 아이와 친구 몇 명이 학급의 한 아이를 괴롭혔으며 해당 아이의 엄마가 학폭을 열려고 준비중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내 아이가 학폭의 가해자라니, 그것도 초등학교 3학년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던 저는 당장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당연히 담임 선생님께 직접 여쭤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 됐거든요.
"네~ OO이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담임 선생님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아주셨습니다. 당연히 제가 전화 건 이유를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의 의외의 반응.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더 의외의 말을 하셨습니다.
"그 엄마 참 이상하시네.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자기 아이 말만 듣고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시는지 원... 저도 알아봤는데요, 화장실에서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그 아이가 애들을 너무 귀찮게 해서 제가 주의를 주고 있는걸요. 그 어머니, 아이한테 무슨 말을 들으신 건지 이제는 아예 학교에 와서 수업시간 내내 창문 밖에서 아이를 주시하고 계세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마셔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당장 안심은 됐지만 그때부터 작은 아이를 앉혀놓고 대화를 가장한 취조를 했습니다.
"네가 진짜 OO이 안 때렸어?"
"그렇다니까? 난 그때 화장실에 가지도 않았어~"
"그런데 OO이가 왜 있지도 않은 말을 해?"
"모르지~ 왜 엄마는 내 말은 안 듣고 OO이 말만 믿어?"
아이는 억울해했고 상처받아 엉엉 울었습니다.
피해를 입었다고 했던 어머니는 가해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집을 찾아가 엄마들을 들들 볶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제게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아이를 이 사건의 주동자라고 했는데 말이죠. 답답해서 전화를 걸어봤더니 바쁘다며 자꾸 저를 피하시는 게 아닙니까? 겨우 겨우 하게 된 통화에서 그분은 제게 이상하리만치 조아리셨습니다. 저를 베테랑 엄마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하셨죠. 사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말 않고 듣고 있던 저는 용기 내어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OO이 어머니. 왜 자꾸 다른 말씀만 하셔요? 정확히 어머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그게 궁금해요. 정말 그런 상황이 있었다면 저도 제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칠 기회죠.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걸 알려야 하잖아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OO이가 거짓말을 했다면 왜 그랬는지 알아봐야 하잖아요. 그리고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베테랑이 어디 있어요? 아이마다 성향이 다 다르고 모든 상황이 처음인걸요. 이번 일에도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걸요? 하지도 않은 일을 말하라며 제 아이를 추궁하는 엄마가 되었어요. 저희 아이한테 맞았다고 학폭을 여시겠다고 했으면서 저한테 왜 아무 말씀 못 하시는 건지 그것도 너무 궁금해요. 이럴 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통화를 끝낸 다음날, 저는 하루 종일 아홉 번의 물 설사를 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 아무 처리도 없이 끝냈다는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학폭은 열리지 않았습니다만 태연한 척 상대 어머니에게 던졌던 말은 제 안에서 저도 함께 무너뜨려버렸습니다. 꾹꾹 눌러왔던 제 안의 하이드가 모습을 드러내고 하고 싶던 말을 내지르던 그때, 장도 함께 요동칠 줄이야...
두 번째는, 5년 전쯤 학교폭력 자치위원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회의가 열렸고 관련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차례대로 의견을 말씀하시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거운 분위기였지요. 그때, 자치위원 한 분의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실수로 무음처리를 안 하셨나 보다 했지요. 누구나 그런 실수는 하니까요. 그런데 그분은 당당히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셨습니다. 목소리를 줄이지도 않으셨죠. 피해학생 부모님이 울면서 말씀하시던 와중에 말이죠. 이어서 몇 번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이쯤 되면 무음으로 전환하지 않은 건 실수가 아니었던 것이죠. 하지만 모두가 황당해할 뿐 아무도 뭐라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참았어야 했는데...
제가 뭐라고, 교감선생님도 아무 말씀 안 하고 계신데 나섰던 건지...
쉬는 시간, 기어이 제 안의 하이드가 나와 한마디 하고야 말았습니다.
"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하이드의 말에 그분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이어진 회의시간 내내 저를 째려보셨고 회의가 끝난 후에는 교문 앞에서 기다리셨다가 속사포처럼 제게 쏘아붙이셨죠.
"저기요! 얘기 좀 해요! 딱 봐도 나보다 어린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뭐? 휴대폰을 끄라고?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뜬 저는, 그다음 날 또 내리 설사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올 초에 있었죠.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로 하이드가 모습을 드러냈고 덕분에 장기적인 설사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참으면 될 것을, 그 쉬운 걸 하지 못해 설사쟁이 망나니 하이드가 설치게 했던 장면들입니다.
하이드의 출현 이후에는 늘 후회가 뒤따릅니다. 누군가의 하이드가 내 안의 하이드를 건드려 일으켰듯이, 내 안의 하이드가 또 다른 누군가의 하이드를 건드릴 것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악함은 선함보다 전파력이 더 강합니다. 분노가 분노를 부추기고 미움이 저주로 이어지는 것도 한순간이죠. 그러니,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내 하이드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며 정당성을 부여하기보다는 '내 하이드도 똑같은 하이드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비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이드를 감당할 깜냥이 제 안의 지킬에게는 없습니다. 이겨내지도 못하면서 순간의 치기로 하이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 저를 얼마나 축내는 일인지를 경험한 이후로 웬만하면 하이드는 꾸욱~ 눌러 두려고 합니다. 온종일 퍼붓는 물설사는 생각보다 힘들거든요...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