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친구들

전역까지 D-355

by 늘봄유정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엄마에게 네 안부를 묻는다. 휴가는 잘 마치고 복귀했느냐, 맛있는 건 많이 먹고 갔느냐. 다음엔 엄마의 안부를 묻지. 얼굴은 실컷 봤느냐, 보니까 좋더냐, 또 울었냐. 아들 얘기만 하면 주책바가지처럼 보일까 봐 엄마는 다른 이야기를 해준단다. 바로, 휴가 때 우리 집을 찾아왔던 네 친구들 이야기지.



휴가 첫날 데리고 왔던 친구 녀석은 초등학교 때부터 잘 알던 아이예요. 아버지는 고위직 공무원인데 엄청 엄하셨죠. 위로 누나가 셋이고 막내아들이라서 엄마가 엄청 애지중지 키웠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들에게 장난도 심하고 깐죽거려서 약간 구박받던 스타일이었는데 고등학교 가서 확 바뀌어버리대? 오토바이 타면서 비행도 저지르고 학폭에도 여러 번 불려 갔어요. 결국 고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강전(강제전학)까지 보내졌지요. 엄하게만 훈육하던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같이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엄마는 그 와중에 암투병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사람들은 참 냉정하게 아이를 욕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왜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도록 호재를 내버려 두냐고 저를 나무랐죠. 속으로는 우리 아이도 똑같은 아이라고 손가락질했을 테고요.

걱정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귀가가 늦는 밤이면 같이 오토바이 타면서 나쁜 짓 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죠. 하지만 우리 아이를 믿었죠. 그 아이랑 놀지 말라는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잘 알던 착한 아이인걸 알기에 잠깐의 방황으로 등 돌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병대로 자원입대한 그 아이는 벌써 제대를 했어요. 제대를 하자마자 입시를 준비하고 있지요.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왔던 거예요. 그런데 글쎄, 얼굴이 다시 초등학생처럼 해맑은 상태로 돌아온 거 있죠. 학폭 때 봤던, 날카롭게 쫙 찢어졌던 눈은 자취를 감추고 헤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거예요. 다시 돌아와 준 그 아이에게 감사하고, 그 아이와의 인연을 놓지 않고 잘 지내온 우리 아이에게 감사했죠.



그다음에 찾아온 아이들도 초등학교 때 친구 두 명이었는데, 들어온 지 십 분 만에 돌아가야 했어요. 밤새 대화나 좀 하겠다던 호재가 술 취해 잠이 들어버렸거든요. 휴가 나온 친구를 만나러 왔는데 친구가 잠들었으니 우리 집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죠.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려던 한 아이가 갑자기 저를 향해 자기 신발이 어디 있냐고, 혹시 치우셨냐고 묻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손님 신발을 왜 치우겠어요. 잔뜩 취한 아이는 이상하다며 연신 바닥을 훑어보고 있었죠. 자기 신발이 아주 더러운데 그 더러운 신발을 정말 못 보셨냐며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와, 그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더 어리둥절해하는 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슨 얘긴지 몰라 도리도리질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에 그 아이는 생각이 난 듯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더니 여기 있다며 신발을 들어 보였어요. 새까매진 흰 운동화를 들어 보이며 정말 더럽지 않냐며, 그래서 차마 신고 들어올 수 없었다며 그 자리에서 신발을 주섬주섬 신고 넙죽 인사를 하고 돌아가대요. 아무리 술이 취했다지만 그 모습이 왜 그리 짠하던지요...



복귀 이틀 전에는 눈이 왔어요. 신발에 묻어온 눈이 녹아 현관바닥이 엉망진창이 되었죠. 그런 날은 버리려고 모아둔 걸레를 현관 바닥에 두어요. 수시로 닦지 않으면 말라서 수습하기 더 힘들거든요.

9시까지 술집에 있다가 아쉬워진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들고 친구네 집에 가기로 했대요. 가는 길에 집에 잠깐 들르겠다는 호재를 따라 두 녀석이 들어왔죠. 깎아준 사과를 먹고 우리 부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아이들은 인사를 꾸벅하고 호재와 함께 다시 나갔어요. 그런데 현관에서 부스럭거리며 나가지 않고 있는 거예요. 거실에서 현관은 보이지 않는데 센서등만 꺼졌다 켜졌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이 가보니 글쎄, 커다란 덩치를 한 두 녀석이 손에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호재는 뭘 하고 있었냐고요? 현관밖에 서서 빨리 안 가고 뭐하냐며 채근을 하고 있더라고요. 얼른 걸레를 뺏으려는데 끝까지 눈 녹은 물을 닦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니 그렇게 웃음이 나더라고요. 애들이 왜 그렇게 다 이쁘죠? 나보다 두 뼘이나 큰데 다 아기 같고 이뻐요~




이렇게 네 친구들 얘기를 하다 보면 엄마는 웃으면서 눈물이 흐른단다. 문턱이 닳도록 우리집을 드나들던 사진 속 꼬맹이들이 어느새 그렇게 컸다니? 그 철부지들이 어찌 그렇게 속 깊은 청년들이 됐다니? 모두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왜 그렇게 고맙다니? 왜 다 내 자식 같다니...

네 얘기만 하면 주책바가지처럼 보일 것 같아 꺼낸 얘기가 왜 또 죄다 너희들 얘기라니?


모두 건강하게 빨리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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