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랑니를 뽑아도...

전역까지 D-342

by 늘봄유정

벌써 2월 중순이다.

시간이 이리 빠르다며 야속해하다가도 군에 있는 너를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다.

뜸한 소식에 별일 없는가 보다 싶지만 나 역시 너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려 속이 상한다. 네가 없어도 잘 지켜주고 싶던 네 방에서는 후끈한 바람을 날리며 24시간 식품건조기가 돌아가고 있구나. 고구마며 귤이며, 이것저것 말리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데, 그럴 때마다 미안함도 방안에 가득이다.



"나 사랑니 뽑았어."

갑작스러운 네 문자에 톡방의 엄마 아빠는 분주해졌다.

"엥? 왜 갑자기? 아팠어?"

"치과에서? 아님 군 병원에서?"

"의무대 의사들은 정식 의사가 아닐 텐데..."

"정식 치료는 꼭 외부 치료로 가라 하던데..."

"외부 치과에서 치료해도 이래저래 20%나 지원된다고 하니 꼭 밖에서 해야 해."


"이번에 군의관이 바뀌었는데 잘 뽑아줘서 사랑니 열풍이야. 부사관들도 다 빼고. 썩을까 봐 미리 뽑은 거야."

이런 해맑은 일병을 보았나...

실력도 검증 안된 아줌마가 공짜로 눈썹 문신해준다고 하니 동네 이 사람 저 사람 몰려드는 형국 같았다. 연습 대상이 되는 줄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몸을 내어주는 것이지.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고 그게 뭐 대수인가 하는 마음도 들고.

그런데 그걸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참 착잡했다. 아프지도 않은 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온전한 이 하나를 생으로 뽑았다 하니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나온 출고 상태 그대로, 순정부품으로 사는 게 제일 좋은 건데..."

헛헛한 농담을 던지며 아빠도 아쉬움을 드러냈지...


여섯 살 때였던가, 샤워를 시키려고 옷을 들췄는데 등허리 한가운데 깊고 길게 패인 상처가 있었단다. 너는 아픈 적이 없다 하고 유치원에서 생긴 것인지 놀이터에서 다친 것인지 몰라 나는 어디에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지. 꿰맬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처가 얼마나 진하던지, 아직도 선명히 떠오른다.

동생이 휘두른 닌텐도에 영구치 앞니가 뚝 부러졌던 때.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 넘어졌다며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피를 줄줄 흘리며 들어왔던 때.

바닥에 넘어져 갈린 피부 곳곳에 박혀있던 모래알을 닦아주지도 어쩌지도 못하던 때.

축구 골대에 부딪혀 어깨 연골이 파열됐는데 수술도 안되고 시간이 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태어났을 때의 그 뽀송뽀송하고 완전한 몸을 지켜주고 싶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접어야 했던 순간이었지. 모든 것이 내 탓 같았던 시절, 어떻게든 다시 돌려놓고 싶던 시절의 이야기구나.


체대 입시를 준비하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너는 아직도 걸을 때마다 발목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나지.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후크선장이 된 듯 온몸이 저릿해진단다. 시계가 채워져 있던 후크선장의 한쪽 팔을 먹어버린 악어의 뱃속에서 똑딱똑딱 멈추지 않고 나는 시계 소리처럼, 서서히 가까워지는 발목 소리를 들으면 온 신경이 곤두서지.

"내다리 내놔~~ 내다리~~"하며 달려드는 전설의 고향 귀신도 생각난다.

좀 더 세심히 치료를 해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엄마로서의 자책이란다.


이제는 걸리적거리는 이 하나쯤은 네 맘대로 뽑아도 되는 나이가 됐건만, 엄마는 여전히 네 상처가 불편하다. 상처 하나 없이 귀하게 키워내지 못했다는 자책을 또 하다가 이내, 겉으로 드러난 상처에만 신경 쓰고 있는 고약한 나를 탓한단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들이 있었을까. 엄마 아빠가 모르는 시간과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할퀴고 뜯긴 상처들을 너는 어떻게 치료했을까. 흔적이라도 들킬까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네가 멀쩡한 사랑니를 뽑아도 어쩌지 못하는 지금이 되어서야, 지난 너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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