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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03. 2022

업무담당자의 잦은 교체가 반가운 이유

경기도에 있는 25개 지역교육지원청 교육자원봉사센터의 업무담당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례발표가 있었습니다.  업무담당자에게 교육자원봉사란 무엇인지, 실제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를 알려드리는 자리였죠. 작년 한 해 동안 스물 두 곳의 지역교육자원봉사센터를 돌아다니며 업무담당자와 지역 봉사자를 만난 결과 보고 자리라고 생각됐습니다.


사실 제가 대단한 신념을 갖고 교육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 노느니 염불한다고 버려지는 오전 시간을 잘 채우자는 욕심, 돈이 없으니 시간과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자는 마음이 적당히 버무려져 시작된 일이었지요. 교육자원봉사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4년째 하다 보니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이죠.


다른 교육자원봉사자들과 업무담당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소한 영역을 알아나가고 있는 과정이었죠. 그나마 봉사자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을 갖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학교 현장에 나가 직접 봉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지? 교육자원봉사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지?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찾아가고 있었지요. 봉사자마다 결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경험을 제공하고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마을이 되도록 하는 것 말이죠.


교육자원봉사센터마다 갖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업무담당자의 잦은 교체였습니다. 공무원이다 보니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2년간 업무를 보다가 다른 부서나 지역으로 발령이 나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예산이 많거나 실적이 중요한 업무가 아니다 보니 다른 일에 치여 잊히고 버려지는 영역이었습니다. 어떤 지역의 업무담당자는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으며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충 시간만 때우다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니 봉사자와 소통은 안되고 지원도 제대로 못해주고 유명무실한 사업이 돼버릴 수밖에요. 어쩌면 속으로는 '이런 걸 대체 왜 하는 거야? 그냥 지역봉사센터에 흡수시켜도 되는 일 아니야?'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당이나 대가 없이 마음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봉사이기에 업무담당자의 역할은 다른 업무보다 중요합니다. 봉사자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배려가 있어야 하고 교육자원봉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담당자 본인에게는 월급을 받기 위한 업무의 하나일 뿐이지만 교육자원봉사자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본인은 봉사자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작년부터 조금씩 이상기류가 감지됐습니다. 원인은 예산 증액.

써야 하는 돈의 사이즈가 커지면 담당자의 부담도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업무의 내용과 맞는 곳에 가치 있게 집행했다는 증빙을 해야 하는 책임이 커진 것이죠. 그래서 부랴부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지역 담당자에게 전화해 활성화 방안을 문의하고 직접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지요. 앞에서 말한 사례발표도 그런 맥락에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강의를 하는 동안, 내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담당자들을 보았습니다. 더러 작정하고 잠을 주무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더 많은 분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절 바라보고 계셨지요. 관심이 생겼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난 것입니다. 다른 지역의 활성화 방안이 궁금했고 각자의 지역에 맞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육자원봉사자로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물론, 이분들도 다음 인사이동 시즌에 다른 부서와 지역으로 발령이 나겠죠. 업무가 익숙해질 즈음, 애정이 생길 즈음 말입니다. 예전에는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제는 달리 보입니다. 막연하고 답답했던 교육자원봉사 업무지만 직접 부딪혀본 공무원이 많아지는, 참 반가운 일이라고 말입니다. 새로운 담당자가 오면 다시 처음부터 알려드리고 합을 맞추어 일을 해야 할 테지만, 그렇게 또 한 명이 교육자원봉사라는 일을 알게 됩니다. 한 명, 두 명, 세명, 네 명.... 느리지만 천천히, 깊게, 오래...


느리지만 천천히, 깊게, 오래 가고 싶은

저는 교자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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