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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09. 2022

<개명 사유서> 늘봄 새봄

늘봄 새봄

어렸을 때부터 내 이름이 너무 싫었다.

늘봄이가 뭐야 늘봄이가? 늙어 보임? 태어나자마자 늙었다는 얘긴가? 나무늘보도 생각났다. 늙수그레하고 못생긴 나무늘보가 어기적어기적 움직이는 모습.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이름 때문인지 자꾸 위축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일기장에는 온통 우울한 낙서뿐이었다. 내 이름을 이렇게 지은 엄마 아빠에게 반항심이 생겼는지 늘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그건 기어이 부모님의 잔소리와 호통으로 되돌아왔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살가운 구석이 없니? 엄마 아빠가 싫은 소리 한마디 하면 금세 뚱해지기는..."


역시 사람은 이름이 좋아야 한다. 동생 새봄이를 보라. 이름에서부터 상큼 발랄하지 않은가. 새로 바라봄, 새롭게 봄, 새 세상을 봄. 무엇을 갖다 붙여도 그저 좋아 보였다. 봄다운 봄, 새봄. 동생은 이름처럼 밝고 애교가 많았다. 우리 집의 애교쟁이, 재롱둥이였다. 엄마 아빠가 동생을 볼 때면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이런 거 보면,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옛말이 하나도 안 맞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자식에 대한 편애가 심했던 사람들을 향한 경고였던 게 분명하다.


동생은 나와 모든 게 반대였다. 삐쩍 마르고 야리야리하며 몸도 약했다. 철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고 초등학교 때는 편도선 수술도 했다. 며칠 동안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는 동생 옆에서 군침만 흘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동생이 핏기 없는 얼굴로 씩 웃으면 엄마 아빠는 뭐든지 오케이였다. 자기 말 한마디면 다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 동생은 "언니도 아이스크림 먹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요망한 년, 못된 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엄마 아빠보다 새봄이가 더 미웠다.

몸은 약한데 공부는 또 왜 그리 잘하는지, 항상 비교당했다. 그래 봤자 등수 차이도 얼마 안 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몸도 약한 애가 공부까지 잘하는 것은 그렇게 훌륭한 일이었다. 튼튼한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상황이 이러니, 나에게 동생은 눈엣가시였다.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동생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IMF가 터졌다.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는 부도를 맞았고 살던 집도 넘어갔다. 다행히 도와주겠다는 친척들이 많았다. 빈 방을 내어주겠다는 분도 계셨는데 문제는 방이 하나였던 것. 다 큰 딸들을 데리고 단칸방은 무리라고 생각하신 엄마 아빠는 나와 동생을 작은아버지 댁으로 보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던 사촌 여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는 더는 잘해주실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를 챙겨주셨다. 작은집으로 들어간 첫날에는 나와 동생, 사촌 동생들까지 넷이서 함께 입을 커플 잠옷을 선물해주셨다. 참 따뜻한 배려였다. 하지만 모든 더부살이라는 것이 그렇다. 주지 않는 눈치도 챙겨 먹어야 하고 시키지 않은 일도 나서서 해야 한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을 준비하던 나는 진학을 포기했다. 당장 나갈 차비조차 없기도 했고 더부살이 주제에 대학원을 꿈꾸는 것이 코미디 같았다. 급한 대로 동네 학원에 취직했다. 작은댁 식구와 동생까지 모두 출근, 등교하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홀로 남으면 난 출근 전까지 청소와 빨래를 했다. 맞벌이하던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려는 것이었으나 고단하고 서러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더부살이에 안 그래도 어둡던 성격이 더 어두워지고 까칠해졌다.

그런데 그때 나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새봄이었다. 밝고 쾌활했던 아이의 얼굴이 한없이 경직되고 어두워져 있었다. 말수가 적어졌고 눈가는 늘 축축했다. 항상 새롭게 빛나는 봄 같던 아이는 아직도 꽝꽝 얼어있는 들녘 같았다. 초록빛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 땅이기는 하되 호미 하나 찍고 들어갈 여유를 내어주지 않는 곳. 그렇게 새봄이는 이름값을 못 하고 있었다.


몇 주에 한 번씩은 부모님이 기거하는 단칸방에 모여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함께 잤다. 우리 가족은 마치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깔깔거렸다. 동생도 그때만큼은 예전의 발랄했던 막내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시 작은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두운 굴속에서조차 보호색을 만들려는 듯 새까만 얼굴로 변하곤 했다.

문득, 새봄이에게 봄이 돼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원래부터 우울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지만 새봄이만은 그런 것에 물들지 않았으면 했다. 힘든 환경일지라도 좌절하거나 슬픔에 매몰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난 사랑을 받아본 적 없이 늘 외면받았으며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나의 우울 바이러스가 새봄이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해야 했다.


일단, 울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작은 집에 얹혀살며 아무도 주지 않는 수모를 혼자 만들어내고는 밤마다 숨죽이며 울던 것을 그만두었다. 씩씩하게 집안일을 했고 학원에 나가 열심히 일했다. 동생들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가며 분위기를 띄웠고 이 생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가족이 다시 함께 모이게 될 날을 상상했고 가족이 함께 했을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나아가 내게도 내어줄 사랑이란 게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밤새 코피가 나던 나를 업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던 엄마의 따뜻한 등.

유난히 코피가 잦았던 나였는데, 피가 멈출 때까지 휴지를 돌돌 말아 대기하고 있던 아버지의 손.

밤새 열이 펄펄 끓던 내 옆에서 걱정하던 두 분의 낮은 목소리.

성적표를 받아온 날 엄마가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가 나만 몰래 준 초코파이.

회장이 된 나를 축하하며 마가 반 친구 모두에게 쏘았던 아이스크림.

내가 입학한 중학교 운동장에 아빠가 몰래 기증하고 간 은행나무 수십 그루.


오랫동안 차고 넘치게 받아왔던 사랑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새봄이만 이뻐한다고, 새봄이만 사랑한다고 질투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질 만큼 농도가 짙은 사랑이었다. 받지 않았던 게 아니라 받은 줄 몰랐던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 아빠는 똑같은 마음의 무게로 우리의 이름을 지으셨고 똑같은 정성으로 우리를 품으셨다는 것을 말이다.

새로운 봄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늘 봄볕 같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항상 봄의 따스함을 지니고 살아야 새 봄이 제대로 움틀 수 있다. 봄은 어떤 이름을 가졌든 그저 모두 함께 봄이었던 것이다. 잘 어우러졌을 때 오래도록 계속해서 따뜻한 이름. 그래서 우리는 늘봄이와 새봄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때부터였다. 늘봄이라는 이름이 좋아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새봄이가 좋아진 것도.



어렸을 적 부모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저를 늘봄, 동생을 새봄으로 짓고 싶으셨는데 완고한 할아버지의 뜻을 꺽지 못했다고 하셨죠. 그래서 저는 송유정, 동생은 송유미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봄'의 어감이 싫었거든요. 동생 이름이 될 뻔한 '새봄'만 이쁘구나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늘봄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늘 봄같이 따뜻한 사람, 늘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이름이거든요. 누군가 '늘봄아~'라고 불러줄 때마다 듣는 이도, 부르는 이도 마음의 온도가 올라갈 것 같은 이름.

'늘봄'에 대한 회상은 필명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언젠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아니 한 권의 책이라도 낼 수 있게 된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부르고 싶어 하던 이름, '늘봄' 책에 새기고 싶다는 꿈도 꿔봅니다.


늘 봄 같은 유정.

나와 당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유정.

늘봄 유정.



* 검색해보니 <새봄이와 늘봄이>라는 동화가 있더군요. 아까비.... 제가 원조가 될 수 있었는데...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혹시 비슷한 내용이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혹시 읽어보신 작가님이 계시다면 이야기해 주셔요~



*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 < 돌봄과 닭살 사이 >


* 매거진의 이전 글, 해룬 작가님 < 봄 >


* 매거진의 이전 글, 로운 작가님 < 열일곱의 봄 >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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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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