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사진: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마당에 매화]
8년 전쯤 딱 3년을 하동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은 겨울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바람도 도시보다 더 겨울바람이고 밤은 더 빨리 찾아옵니다.
다시는 풀조차 자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휑한 들판
하늘을 향해 비질하는 깡마른 나뭇가지들
그리고 얼어터진 마당 수돗가
넉넉잡아 반 년이 겨울스럽다고 할까요.
일찍 겨울이 몰려오고 늦게 봄이 옵니다.
봄을 알리는 들꽃이나 나뭇가지의 봉우리는 시골이 빠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밤에 되면 낮에 왔던 봄은 슬그머니 힘을 잃습니다.
사월 중순이 넘어야 밤에 난방 불을 뺐었나 봅니다.
[마을 개울가 버들강아지]
지겨운 겨울이 물러갈 무렵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만난 버들강아지입니다.
더없이 보드라운 버들강아지를 보니
봄이 온다는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얼었던 개울에 흐르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이 우리 마을에도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 자목련 나무에 매단 봉우리나
뒷 마당에 세 그루 매실나무에도
봄편지가 걸려있었습니다.
급히 나온다고 잎보다 꽃이 먼저 올라오지요.
겨우내 단장하며 기다린 봄꽃이나
그런 봄꽃이 보고 싶어 기다린 사람 마음이나
한 마음으로 통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을에 핀 광대나물, 개불알풀(봄까치풀)] 쇠별꽃, 광대나물, 개불알풀, 꽃다지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봄편지였습니다.
일제히 띠를 두르고 한날한시에 독립운동을 하듯
산 위에도 들판에도 그늘진 앞집 할머니 텃밭에도 연둣빛이 창궐했습니다.
누가 알려줬는지 누가 언제 터트리자고 의논을 하였는지 참 이상도 했습니다.
들판에 오르면 그날 먹을 쑥은 거뜬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뒷날 다시 가도 언제나 한끼 먹을 만큼 쑥이든 냉이든 흙은 내어줬습니다.
봄은 그랬습니다.
저에게 봄은 언제나 설레는 편지였습니다.
이런 봄풍경을 담아
봄편지라는 동시조를 지었나 봅니다.
봄편지
겨울이 흘리고 간 개울가 물줄기는
기다란 종이에 쓴 반가운 봄편지
졸졸졸 물소리까지 빼곡히 적혀있지
조급한 마음은 꽃들이 더한가 봐
잎사귀 제쳐두고 얼른 나와 피었잖아
순서랄 게 뭐 있나
잘 웃는 꽃이 봄편지 먼저 보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