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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04. 2022

기권도 권리일까요?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3차 토론을 시청한 후 마음의 결정을 내린 터였습니다. 충분히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갑작스러운 야권 단일화 선언에 적잖이 동요됐습니다. 정치인의 행보라는 것은 늘 국민들의 예측을 뛰어넘는구나, 설마설마했던 일을 기어이 해내는 게 정치하는 사람들이구나, 했네요.


이제 국민들의 여론이 어디로 향할지는 투표함이 열리기 전까지 철저히 봉인되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알 수 없고 단일화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비밀스럽고 고요한 각자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죠.


꼴 저 꼴 보기도 싫고 이놈 저놈 다 싫으니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기권도 유권자의 권리이자 선택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과연 기권도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 수단의 하나로 수용해야 할까요?

대의민주주의에서 기권이란, 참정권을 국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명백히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져버리는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도 있긴 합니다만 투표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한 표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으면 합니다.


미국의 작가 프랭클린 애덤스는  말했습니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차악에게 표를 던져 최악이 당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한 말씀하셨죠.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님이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인 동조다."

<신곡>의 저자 단테의 말이라네요.


다음은 누가 말했을까요?

"Angry? Just Vote!"

"화나셨습니까? 그러면 투표하세요!"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교수가 전한 투표 독려 메시지입니다. '앵그리 버드' 게임을 예로 들어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지요.

"앵그리버드는 견고한 기득권 속에 숨은 나쁜 돼지들을 향해 자기 몸을 던져서 성곽을 깨뜨립니다. 앵그리버드는 하나하나가 유권자들의 한 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년 전의 발언이 유난히 가슴팍에  내리 꽂히네요.


답답하고 무력해지는 정치판이지만, 그럴수록 투표해야겠습니다.

행사하지 않 한 표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끝나고 나면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침묵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야 합니다.



검색을 하다가, 1967년 4월 28일 자 중앙일보 칼럼을 발견했습니다.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를 독려하는 글이더군요.

그 해의 선거는 83.6%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51.44%를 얻어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기권의 성격
중앙일보 1967.04.28

투표율은 체온과 같다는 말이 있다. 몸에 고장이 나면 고열이 나는 것과 같이 한나라의 정치가 어렵고 많은 문제를 내포하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이 높은 투표율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투표율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는 추측하는 도리밖에 없으나 대체로 80%를 넘는 과거의 전통과 최근의 동태로 미루어 보아 꽤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가하리라 짐작된다. 덮어놓고 투표율이 높은 것이 반드시 경하할 일이 아님을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몇 가지 조건 아래 기권자의 수가 적기를 바라고자 한다.
첫째로 투표 참여자는 입후보자나 문제점 등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깊은 예비지식 없이 그리고 확고한 결심 없이 투표하는 행동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해치는 결과밖에 안 가져오는 것이다. 국민 각자의 깊은 자각에 입각하여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가장 어려운 점의 하나인 만큼, 선거 계몽도 이점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둘째로 더 큰 문젯점은 기권자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하여 이들의 깊은 자주적 관심을 투표에 반영토록 하는 것이다. 선거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기권하는 경우는 제쳐놓아야 하겠으나 충분한 이해를 가지면서도 자기의 한 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까닭으로 투표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의정치는 그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가장 좋은 제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투표를 포기하여 통치자의 선정에 참여하지 않는 일이 잦아질수록 국민이 주권자 아닌 노예로 전락한다는 무서운 결과를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권의 항의를 표시하는 경우도 있음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기권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현존하는 어는 정당도 또 입후보한 어떤 인물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물론 있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혁명이 아니라 개선을 바탕으로 하며, 동시에 양자택일을 불가피한 전제로 한다.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있더라도 자기의 의사를 표를 통하여 반영시킴으로써만 정당의 변화도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입후보자가 가장 좋아서가 아니라 그중에서는 결점이 덜하기 때문에 투표하는 유권자의 경우도 많다는 것을 여기서 강조하고자 한다.
이상적인 통치자를 소망하는 나머지 신의 출현을 기다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구별의 유권자수가 발표되었고, 중앙선관위는 기권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는 특히 정치적 관심이 높은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참여를 권유하면서,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포악하고 옳지 못한 정부에 대하여 항의할 자격이 없다』는 격언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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