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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pr 15. 2022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는 이유

< 정치학 책 읽기 세 번째 >

<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 만나는 4월 모임, 우리는 어느 정도 추스르고 정리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하필 4월 선정 도서가 김누리 교수의  <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였지요.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이하 우절권)는 저자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 4년 차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겨레> '세상읽기'에 연재한 칼럼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래서, 2020년에 발간된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하 우불당)의 내용과 거의 유사합니다. 오히려 '우불당'의 구성이 더 짜임새 있어서 한 권만 읽으신다면 '우불당'을 권합니다.


'30-50 클럽'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를 '30-50'클럽이라고 부릅니다. 이 그룹에 들어가 있는 나라는 오직 일곱 국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입니다. 그중 유일하게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두었던 역사가 없는 나라이며 7개국 중에서 민주주의 1등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수준을 비교한 연구에서 대한민국은 전체 12위, 7개국 중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우불당 p24)


하지만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지수, 연평균 근로시간 OECD 회원국 최상위, 각종 사회갈등 지표 1위의 기록으로 더 익숙합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바꾼 위대한 민주주의를 보여준 나라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 말입니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적 지옥'으로 변한 미국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우절권 p258)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이 강요되는 경쟁사회

- 세계 최장 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사회

- 인간의 가치가 시장의 논리에 종속되는 시장 중심사회

- 경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불평등사회

- 합리적 사유보다는 종교적 신비적 해결에 의지하는 신앙 사회

- 진지한 성찰이나 독서 대신 대중문화에 사로잡힌 무성찰 사회

-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정글자본주의 사회


'제도의 민주화'와 '일상의 민주화'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 (우불당 p34)
정치의 경우 시민들의 '방관'은 극단적이다.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만, 아무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평론가는 넘쳐나지만, 정치 활동가는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한국 정당의 본색은 '당원 없는 정당'이다. 이는 매력 없는 정당 탓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관하는 시민 탓이기도 하다. 모두 곁에서 훈수만 둘 뿐 참여하지 않는 사회, 정치 혐오를 좀 더 세련된 정치적 취향인 양 조장하는 방관 사회에서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실현될 수는 없다. (우절권 p33)


제도의 민주화, 광장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한국의 민주화는 '국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가 없는 민주화라고 말합니다.(우절권 p52)  

일상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이것이 우리가 불행하다 여기고 절망하는 이유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우리가 특히 정치에 실망하는 이유를 진정한 진보가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찾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여야로 불리는 두 기득권 세력이 결탁하여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우절권 p215)  제도적으로는 민주화됐으나 정치인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아직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가 불행과 절망의 이유인 것입니다.


결론은 교육

이런 책을 읽을 때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입니다. 누구나 떠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장 현실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때 의미 있는 고민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교육'과 'Lifism'

독일 유학의 경험 때문에 저자는 대부분의 해법을 독일에서 찾습니다. 그중 하나가 '교육'입니다. 독일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에 비중을 둔다고 합니다. 강한 자아를 갖고 불의한 권위에 쉬이 굴종하지 않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하는 성교육, 갈등조정 능력과 정의를 혜량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정치교육,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와 책임감을 길러주는 생태교육. (우절권 p115)

능력주의가 잠식해 피폐해진 한국 사회를 '존엄주의' 교육을 통해 개혁해보자고 합니다.


다른 하나인 'lifism'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입니다. 인간의 삶과 생존, 더 나아가 생명을 파괴하며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 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합니다.(p317)

다소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해법일 수 있으나 결국은 국민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실천을 이끌어내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거듭나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학교에서는 정치교육을 해서는 안된다는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인식이 국민의 우민화를 꾀하는 기득권층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반정치의 정서, 정치 혐오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 (우절권 126)


그래서 우리는? 나는?

책은 책이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봤습니다.

사회가 가진 문제를 좌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 분명 필요합니다. 그에 더불어 토론을 가르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하면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 토론이라는 합리적인 의사소통방식을 알려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그러한 일환의 하나죠.


최근 거기에 더해 <민주시민교육사> 양성과정을 이수중입니다. 시정연구원 산하 민주시민교육센터 주관으로 총 78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연수가 끝나면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자가 많아지는 사회를 꿈꾸며, 저부터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일상의 민주화를 위해,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정치 혐오를 좀 더 세련된 정치적 취향'인 양 생각하는 방관자로 살고 계시지는 않나요?

우리는 우리의 불행에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절망할 권리도 없습니다.

오직, 배울 자유와 실천할 의무만 있습니다.


우연히 저자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편향되지 않은 시각, 해박한 지식, 시종일관 다정하고 예의바른 말투와 태도, 편안한 인상. 존경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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