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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pr 25. 2022

우리 엄마 아빠랑 놀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처럼 떡 주문을 받았습니다.

작년에 칠순이었던 친정어머니가 올해 칠순을 맞은 모임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 하신 겁니다. 딸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말씀을 못하다가 "떡 좀 해다 드릴까요?"라며 지나가듯 묻자 날짜까지 알려주며 덥석 해달라고 하셨지요. 어머니가 워낙 떡순이라서 가끔 만들어 드렸는데, 이번엔 같이 먹게 넉넉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시더군요. 게다가 매번 해달라던 시루떡 외에 모둠 찰떡도 원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선물을 하고 싶으신가 보구나'싶어 기왕 하는 거 신경 써서 준비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어머니가 떡을 해주고 싶다는 모임은 역사와 전통이 깊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한 골목에 마주하고 살던 일곱 집의 친목모임이 이어오고 있는 것이죠. 40년 지기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몇 년 전 어머니는 2년 정도 잠수를 탔습니다. 말끝마다 '나쁜 년들'을 입에 달며 섭섭함을 토로했죠. 친구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집 앞에 찾아가 외출한 어머니를 몇 시간이나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꿈쩍도 않던 어머니는 마음을 열었고 다시 예전처럼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화투를 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좋게 코로나 바이러스도 나누었고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칠순 기념 생파 모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란 사람은 참, 그래요.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좋게 하면 되는데 계속 꼬투리를 잡고 심사가 꼬입니다.

'친구들 다시는 안 본다고 문 걸어 잠글 때는 언제고, 그새 저렇게 챙긴대?'

'그렇게 욕하더니 친구가 모둠 찰떡 좋아한다고 그걸 해달라는 건 무슨 심리지?'

그러다가도 이내 어머니와 친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친구들이랑 다시 잘 지내니 얼마나 좋아? 다행이네. 다시 즐거워지셔서...'

'참 고마운 분들이네. 삐진 친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시다니... 떡 해드릴 이유가 충분하구나.'


아무튼, 떡 재료부터 포장까지 신경 써서 준비를 했습니다. 일곱 분에게 드릴 떡상자를 하나하나 광목 보자기로 포장했고 식사하는 자리에 직접 가져다 드렸지요. 제 눈에는 한 분 한 분 40년 전 그대로인데, 그분들은 되려 제게 그러시더군요.

"어머~ 유정아~ 넌 어쩜 그대로니? 누가 아들 군대 보낸 엄마라고 믿겠니?"

뻔한 덕담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으로 저는 진심을 담아 한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오래 함께 하시는 모습, 너무 좋아 보여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일곱 분은 합창하듯 말씀하시대요?

"그럼~~ 보다시피~~"


갈빗집을 나서는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 핑계로 칠순 식사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못난 딸이 이렇게 간단하게 어머니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린 것이 좋았지요. 친구들에게 면을 세워드린 것도 좋았고, 그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유쾌한 친구분들과 함께 계신 것도 좋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중요하다던데, 어머니가 그 소중함을 되찾은 것도 좋았죠.


어머니와 함께 동거 중이지만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바쁘셔요? 어디세요?"

"친구들이랑 밭에 뭐 심으러 나왔지~"

"코로나 증상은 없어요? 어머니한테 안 옮으셨나?"

"아휴~~ 우리는 그런 거 안 걸려~"

"하하. 맨날 말하는 '우리'가  대체 누구예요?"

"우리? 있어~~ 우리는 잘 먹고 잘 놀아서 코로나 안 걸려~ 걱정 말고 너희 식구나 챙겨~"


아버지에게도 '우리'가 있었습니다. 작은 텃밭을 함께 꾸리고, 닭을 키워 달걀을 나누는 친구들이죠. 때로는 그 닭을 잡아 드시기도 한답니다. 텃밭 옆에 아예 컨테이너 숙소를 하나 만들어 밥도 같이 해 먹고 술도 마시고 화투도 치는 모임이 아버지에게도 있었습니다.


불현듯, 아이들 어렸을 때가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나, 싸우지는 않았나 살피고 생일이면 아이의 친구들을 집으로 잔뜩 초대해서 맛있는 걸 해먹이던 시절이 있었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걸 부모님에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싸워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건 아닐까. 여행 가는데 엄마 아빠만 혼자 못 낀 건 아닐까.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다행인데 친구분들에게 떡이라도 해 드려야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아이들이 친구랑 잘 지내면 '기특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부모님에게는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노후를 친구분들과 즐겁게 지내시는 두 분께 감사하고, 그런 저의 어머니 아버지와 잘 지내주시는 친구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 댓글창은 닫아두겠습니다.

효녀도 아닌데 댓글로 전해주실 칭찬을 듣기가 겸연쩍어서입니다. 게다가 제 민낯을 알고 있는 남편이 이 글을 읽으면 혀를 찰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한테 삐지면 몇 날 며칠 전화도 안 받는 저이거든요. 급기야 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해 "이서방, 집에 무슨 일 있나? 유정이가 전화를 통 안 받아서..."라는 말을 남길 때까지 꿍해있을 때도 있는 사람이 접니다. 그러니, 떡 한번 해드린 걸로 지상 최고 효녀 코스프레를 하는 게 스스로 영 못마땅합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으로 댓글과 응원을 대신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주로도 쓸 수 있는 광목 보자기에 포장해 드렸는데, 서로 빨간색을 갖겠다고 가위바위보까지 하셨다는 후문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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