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un 20. 2022

1000일, 기적의 궤적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네.


전쟁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견디며 침묵 속에서 살아온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을 그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책의 제목은 17세기 페르시아 시인인 사이브 에 타브리지가 카불의 아름다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역사,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위의 시에서 따왔다고 하지요.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아프간 여성들 한 명 한 명의 가슴속에도 찬란하고 뜨거운 태양이 살아 꿈틀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1000

1000은 태양을 닮은 것 같습니다. 쉽사리 닿을 수는 없지만 그 수만큼의 장소로 갈 수 있고 그 수만큼의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수.


1000일 전, 제 첫 글은 100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100일 후의 죽음을 가정해 매일매일 의미 있는 삶을 살고 기록하자며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했지요. 그때는 100조차 닿기 힘든 숫자라 여겼던 겁니다. 

100일 글쓰기가 끝났을 때, 나에게 주어진 매일은 '기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쓴 것도 기적이요, 매일의 삶에 의미와 재미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도 기적이었지요. 기적 같은 100일이 계속 모이면 결국 나의 삶 전체가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번의 100일이 모이니 1000일에 닿았고, 저의 1000일은 더없이 충만해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말했다죠.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There are only two ways to live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브런치에서의 1000일은

'나'의 소중함을 알려주었고,

'우리'가 갖는 위대함을 일깨웠으며,

앞으로 맞이할 매일매일에 '기적'이 넘칠 것임을 믿게 했습니다. 


매일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과 기적으로 가득한 날들을

담담히 기록해 나가렵니다.

그 기적의 궤적을 다시 시작합니다. 


* 1000일 전, 첫 글을 소개합니다. 

(몸에 맞는 쥐구멍이 없어, 숨지는 못했습니다;;)

< D-100 >     
나는 100일 후에 죽는다.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라. 100일밖에 살 수가 없다.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돌잔치만큼은 아닐지라도 떡도 하고 백일상도 차리며 100일을 잘 버텨줬음을 축하한다. 중요한 거사를 앞두면 100일 전부터 날짜를 계산해가며 계획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수능 D-55일이군... 고3인 우리 큰아들이 수능 치는 것, 성적을 받는 것, 수시 지원한 학교들의 합불 여부를 알 수 있는 시간은 남았으니 다행이다. 

1 기압에서 물이 끓는 것도 100도요 대부분의 시험도 100점이 만점이고 1세기는 100년이다. '항상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100%라고 하고 능력이 탁월한 사람을 ‘일당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100일이란 없다. 죽음은 늘 예측할 수 없으니. 
물론 죽음을 생각해 오늘의 삶을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에 대한 책이나 강연은 많다. 하지만 100일 후 죽게 되는 사람이 계획표를 작성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

사실 계획표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이다. ‘Death Note’가 되어서 100일 후에 진짜로 죽으면 어쩌나 하는.... 마치 일요일 낮에 하는 ‘서프라이즈 진실 혹은 거짓!’에나 나올법한 얘기처럼 말이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 
100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며 차근차근 삶을 정리하는 나를 지켜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에 집착하면 벌어지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