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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3. 2022

구름 없는 하늘 아래

보글보글 글놀이 < 동화 >

"엄마 엄마! 그거 알아? 하늘에 구름이 없다?"

"그래?"

영출이의 말에 엄마는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어머~ 하늘이 참 맑고 깨끗하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라는 표현이 딱 저거지."

"아니 아니, 구름이 없다고~"

"구름 없는 하늘이 뭐 어쨌다는 거야? 놀이터에서 놀다 말고 헐레벌떡 뛰어와서 갑자기 웬 구름 타령? 얼른 손이나 씻어. 하늘은 맑건만 네 손은 왜 그 모양이니?"

새까매진 손을 얼른 씻고 식탁에 앉은 영출이는 본격적으로 구름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엄마. 구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구름? 하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는 질문이 더 정확한 질문 같다만, 글쎄다... 어디 보자... 언제 마지막으로 봤을까나? 그러고 보니 구름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치? 그렇지? 그래. 구름이 사라졌어.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며칠 구름이 없을 수도 있지."

"며칠이 아니야. 구름이 없어진 지... 한 달도 넘었어. 확실해. 내가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하는 일이 뭔지 알아? 엄마?"

"양치질이 아닌 건 확실히 알지. 푸하하하"

"아! 장난치지 말고~"

"알았어 알았어."

"하늘 올려다보기야. 비가 오건 눈이 오건, 하늘이 맑건 흐리건 하루에 세 번씩 보거든. 그런데 최근 한 달 동안 구름이 안보였어. 구름만 안 보인 게 아니라 날씨도 그대로야. 비도 안 왔고 바람도 안 불었어. 마치 사진 속에 있는 하늘, 날씨 같았다고.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계속될 수 있는 거냐고."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날씨가 좋으면, 좋은 거 아닌가? 어찌 됐든, 호기심이 많다는 건 좋은 거야. 구름이 안 보이는 현상에 대해 엄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검색을 좀 해보는 게 어떨까? 엄마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아."

"알았어... 내일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에게 여쭤봐야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출이는 궁금해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지요.

'구름 없는 하늘'이라고 입력하니 시 한 편과 수필 한편, '구름이 없어졌어요'라고 검색하니 유아들이 보는 영상들만 쭉 나왔어요. 그나마 과학적이라고 할만한 이야기는 '가을 하늘에 구름이 없는 이유'였지요.

  여름철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가 저기압이 됩니다. 저기압의 특성상 상승기류가 존재하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나라 상공에 수증기와 미세먼지 등이 모이는데 그게 구름이 되는 거죠. 대신 가을에는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상공에 있는 수증기가 다 흩어지기 때문에 구름이 없습니다.

지금은 7월. 설명대로라면 뭉게구름이 한창이고 소나기도 자주 와야 하는데, 소나기는 커녕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영출이는 신기했습니다. 아니, 무서웠죠.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영출이는 이 사실을 담임선생님께 알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영출이가 활동하는 과학동아리 담당 선생님이기도 했지요.

"그래? 한 달째 구름이 없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꽤 심각한 상황인데?"

선생님은 엄마와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영출이의 궁금증이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라는 얘기였지요. 영출이는 어서 설명해달라는 얼굴로 선생님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구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낸 것, 정말 대단하구나 영출아. 과학의 시작은 관심과 관찰이지. 과학동아리 부장답네. 그런데 구름이 없어졌다는 건 꽤 심각한 일이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단다. 구름이 없어졌다는 건 말이지... 지구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거든..."

이어진 선생님의 설명은 충격적이었어요.


"구름이 만들어지려면 아래쪽에 있던 공기가 상승기류를 타고 충분히 하늘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러려면 땅 위 공기의 높은 온도와 하늘 공기의 낮은 온도 사이에 큰 온도차가 있어야 하지. 온도의 경사가 만들어져야 기압 차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땅 위의 공기가 하늘까지 힘차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차가워야 할 하늘의 온도가 높아졌지. 땅 위의 공기 온도와 하늘 위의 공기 온도 차이가 사라지게 되었으니 땅 위에 있던 공기가 하늘로 올라갈 일이 없어진 거야. 다시 말하면, 구름을 만들 수 있는 땅 위의 공기들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 위에 가라앉아버렸다는 거지...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 지금, 구름이 만들어지는 건 힘들다고 봐야 해. 구름이 없다는 건 말이다. 재앙이야. 구름이 없으면 강한 햇빛이 그대로 내리꽂게 되고, 구름이 없으면 물의 순환이 멈추는 거고 눈, 비도 없어. 구름이 없으면 가뭄이 심각해질 거고 생물은 점점 죽어갈 거야... 구름이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야..."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야 구름이 생길 수 있어요? 우리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다... 그건 구름이 사라지기 전에 했어야 할 고민이겠지... 아니다. 고민과 걱정은 이미 충분히 했었지. 고민과 걱정만 했었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말이야..."

영출이는 교실 창 너머 하늘을 쳐다봤어요.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르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영출이는 작년 여름의 가족여행 사진을 들여다봤습니다. 유난히도 신기한 구름이 많아 하늘을 배경으로 장난스러운 사진을 많이 찍었죠.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  자신을 바라보는 영출이의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가 구름이랑 신나게 노는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

오늘,  하늘을 보셨나요?

구름이 보이시나요? 비가 온다고요? 다행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네요.


일주일 동안 '구름'만 생각하다가 '구름이 없어진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즐거운 동화를 써보자고 생각했는데, 구름이 없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알려주는 영상을 발견하고 말았지요. 그러니 글에 먹구름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글의 상당 부분은 이 영상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우리는 구름에서 일상의 모든 것을 발견해냅니다. 토끼, 고래, 하트, 강아지 등등 사랑하는 모든 것을 구름이 보여준다며 좋아하지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흘러가는 구름의 변화무쌍함. 그것이 그토록 눈물 나게 아름다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무성영화가 머리 위에서 매일 상영되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보다는 구름 가득한 하늘을 더 자주, 오래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꿈이 꿈에 머물지 않도록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 TMI

글 속 주인공의 이름 '영출'과 글 제목은 1977년 개봉했던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가져왔습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일지라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나가던 영출이의 모습이 구름 없는 하늘 아래, 우리이기를 바라며...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 구름 >

*매거진의 이전 글, 돋보기시스템 작가님의 < 마음의 안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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