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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25. 2022

돌봄 교실, 디베이트를 만나다?

지난주 월요일, 용인의 모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4주에 걸친 디베이트 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봄교실에 보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돌봄교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나였다.

교육청 돌봄교실 업무 담당자의 부탁(이라 쓰고 강권이라고 읽으련다)으로 가게 된 돌봄 봉사.

결론은, 할머니라도 된 것 같은 눈과 마음으로 귀염 뽀짝 아이들을 바라보았지만 디베이트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수업을 했다.


돌봄교실 수업에서 오늘의 활동이 다음 회차로 연결되는 것은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입안문을 쓰거나 정식으로 토론을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 터였다. 40분 안에서 짧고 굵게 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글쓰기와 발표를 경험하고 타인의 발표를 경청하는 경험을 하는 수업. 그래서 첫 시간 활동으로 준비한 것은 <포토 스탠딩>이었다.

<포토 스탠딩>은 사진을 이용해 주제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냥 말해보라고 하면 막연할 수 있지만 이미지와 연관 지어 말해보라고 하면 조금은 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발표를 조금 쉽고 편하게 접해보도록 돕는다. 사진을 한 장만 주기보다는 서너 장 정도 주어 고민하게 하는 것이 좋다. 받은 사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한 번의 교환 기회를 준다.
자신의 생각과 이미지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샘솟기 때문에 아이들의 엉뚱하고도 기발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이들에게 각각 서너 장의 사진과 활동지 한 장을 나눠주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주제에 맞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에 걸맞은 사진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의 꿈과 사진 속 장면의 공통점을 찾아 비유를 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약간 어려운 활동일 수도 있겠지만 늘 그렇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뛰어난 비유와 엄청난 설명은 없다. 하지만 꾸밈이 없다.

그게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다.

게다가 발표의 떨림, 끝난 후의 뿌듯함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것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돌봄 교실은 수시로 들고나가는 아이들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모두 1, 2학년이라 아가들이었다.

열심히 활동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짐을 챙기고 가방을 메더니 사라진다.

활동이 중후반으로 넘어가는데 갑자기 몇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새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활동지를 챙겨주고 참여를 유도했는데 조금 끄적이는가 싶더니 또 사라지고 없다.

언제라도 나가려는 마음 때문인지 책가방을 계속 메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내려놓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조금 집중하는가 싶으면 앞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부르신다. 할머니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 나간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는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며 문을 닫으신다.

이제 좀 수업을 해볼까 하는데 또 몇 명이 가방을 챙긴다.


가장 당혹스러우면서도 웃겼던 장면이 있다.

한 아이가 책가방을 의자 등걸이에 걸어두었다. 가방의 무게를 못 이긴 의자는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발라당 자빠졌다. 가방을 책상 빈 공간이나 다른 의자 위에 올려놓으라고 말하면 아이는 "괜찮아요."라고 했고 이후로도 의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내가 안 괜찮아. 신경 쓰인다고... 다른 애들도 의자가 쓰러질 때마다 깔깔 웃잖니.'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아이의 말간 얼굴을 보면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오히려 반복되는 자빠짐과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일으킴에 나까지 웃음이 났다.


디베이트 수업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고민하고 질문하고 소통하기'를 지향하는 디베이트 수업의 본질에는 맞지 않았을까 위안한다.

게다가  순수함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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