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교실 2차시.
이번에는 즉흥연설을 준비했다.
즉흥연설은 다양한 스피치 프로그램과 디베이트 활동,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 고등학생 토론 단체인 National Speech and Debate Association(NSDA)의 다양한 스피치 활동 중, 즉석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30분 동안 준비를 하고 발표를 하는 활동이다. 즉흥연설의 구조가 디베이트 입안문의 구조와 같아서 디베이트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청중 입장에서도 스피치를 경청하고 즐기게 된다.
즉흥연설을 최대한 간단하게 준비했다. 디베이트를 하기 위한 여정으로 '나의 의견 발표하기'와 '친구의 의견 경청하기'를 해보기 위함이었다. 1, 2학년이 생각해볼 만한 주제 10개를 정해 활동지를 준비했다. 친구의 발표를 듣고 정리하는 활동지도 준비했다. 각자에게 두 개의 질문지를 주고 그중에 한 가지를 정해 글을 써보라고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질문이 없으면 한 번의 교환 기회를 주었다. 다행히도 교환해달라는 아이가 생각보다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생만 가르쳐본 나에게 돌봄교실 수업은 매일이 도전이요 신세계다.
이번 수업 역시 시끌벅적 시장통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쓰고 발표한 결과물이 놀라웠다. 게다가 친구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잘 듣고 꼼꼼히 기록하는 모습은 감동!!! 미래의 멋진 디베이터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입을 앙 다문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쥐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집중하는 미간은 도대체 뭘 쓰길래 저럴까 궁금하게 만든다. 가까이 다가가면 과자 냄새가 난다. 과자를 먹은 건 아닐 텐데 아이들에게서는 손에 과자를 잔뜩 집고 먹었을 때 손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결혼 전인 20여 년 전에는 그 냄새가 싫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정겹다. 냄새마저 귀엽다.
글에는 안 쓴 내용을 첨가해서 발표하는 아이, 어느 부분에서 힘주어야 하는지 아는 아이, 좌중을 웃기는 연설을 하고 싶어 오버하는 아이. 제각각인 아이들의 발표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른 사람의 발표를 적으라는 미션은, 집중해서 듣는 것과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꼼꼼히 쓸 것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초집중 모드였다.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거나 너무 빨라 못 들으면 난리가 났다. 다음 순서의 사람이 발표하러 나오면 "잠깐만요 선생님!!! 아직 다 못 썼어요!!! 아직 시작하지 마세요!!"라며 다급하게 외쳤다. 이렇게 진심이라니. 어느 학년에서도 볼 수 없는 열정이다.
수업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저 기억해요? 지난주에 안 와서 저를 처음 보는 친구들도 있지요? 제가 지난주에 저를 소개할 때 뭐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아이들은 눈만 꿈뻑꿈뻑하며 나를 쳐다봤다. 뭔가 기억나는 듯 안 나는 듯 중얼거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물어보면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그때 한 아이가 말하기를,
"행사하는 사람이요!"
난데없는 행사 이야기에 멍해졌다.
행사? 행사 진행자를 말하는 건가?
내가 지난주에 그렇게 방방 떴나? 나는 기본값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때 한 아이가 작은 소리로 "무슨 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라고 했다.
"아~ 봉사요? 봉사 말하는 거죠? 맞아요. 선생님은 교육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여러분에게 토론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사람."
그 정도 기억해준 것만 해도 어디냐 싶었다.
봉사가 아니라 행사하는 사람. 나쁘지 않다.
행사하는 사람처럼 늘 신나고 재미있게 수업하고 싶다는 바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