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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0. 2019

D-100 프로젝트 < D-49 >

"무슨 도서관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아? 아줌마, 아저씨들도 많아~~"

도서관에 다녀온 남편은 학생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열람실에 많더라며 공무원 시험이나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는가 보다고 했다.

"많지..."

4년 전 마누라가 했던 돌발행동에 대해선 벌써 잊었나 보다...   


2016년 3월. 난 공무원 시험을 봤다...


컴퓨터용 싸인펜과 운전면허증... 시험장에 들고 간 건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첫 시험이라지만, 공부도 하나도 안 하고 그저 간 보기 위한 시험이라지만, 앉아있기가 민망할 정도로 너무 아무것도 없이 의자에 앉아 있노라니 코미디 영화 한 편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교탁에서 봤을 때 왼쪽, 그러니까 복도 쪽 벽에 붙은 책상에 앉은 내게,  오른쪽에 벽이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맙고 다행일 수가 없었다. 벽 쪽으로라도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덜 쪽팔렸다.


9시까지 입실이고 10시부터 시험이 시작된다고 해서 8시 반에 입실했다. 9시부터는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소지품을 교실 앞쪽에 모아 두고 공항 검색대에서나 봤었던 금속탐지기로 한 명 한 명 검색했다. 수험생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배낭에 하나 가득 책을 지고 와서 책상에 잔뜩 펼쳐 놓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여자 수험생만 모아놓은 이 교실, 이 학교에는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험생이 신기하게도 비슷한 복장,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등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거나 머리 꼭대기에 똥머리로 올리고는 운동화에 트레이닝 바지, 그리고 집업 후드를 입은 20대 초반 아가씨들. 그들에게 난 어떻게 보였을까?

귀밑 짧은 단발에 자주색 사파리 점퍼를 입고 초록색 운동화를 신은... 점퍼 한쪽 주머니엔 중학생 아들 필통에서 가져온 컴퓨터용 싸인펜 두 개가 들어있고 반대편 주머니엔 자동차 키와 운전면허증, 수험표가 들어있었다. 휴대폰이 반입 안된다는 걸 미리 알고 차에 놔두고 들고 오지 않는 치밀함을 보이는 아. 줌. 마.

슬픈 코미디 한편 찍고 있는 것 같았다.


공무원 시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1년 전인  2015년이었다.

큰아이 친구 엄마 중, 퇴직한 남편과 스포츠 의류 매장을 운영하던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2년간의 준비 끝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구청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무원 나이 제한, 학력 제한이 없어지면서 고등학교 졸업생들도 졸업과 동시에 시험을 볼 수 있었고 50대 퇴직자들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외고 졸업생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선택 과목으로 국수사과를 선택해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도 했다. 그때는 막연히 나도 해볼까 하는 꿈만 꾸었더랬다. 이제 와서 머리도 굳은 아줌마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게 웃기는 일 같았다.


그것도 웃기는 일인데.... 내가 응시한 분야는.... 9급 경찰 공무원, 순경 시험이었다...

책꽂이 한편에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시험지...


그렇게 막연히 "해볼까?"수준이었던 내가 시험을 보기로 본격적으로 결심한 건 2016년 초 어느 날, 아마 1월이었던 것 같다. 뉴스 한 꼭지에서 나이 많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40세의 중년 아저씨 한분이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머리 한방 맞은 듯, “나도 저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막연히 동사무소 직원만을 떠올리던 공무원이 아니라, 뭔가 활동적이면서 보람찬 공무원이랄까, 범죄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형사를 떠올리며 갑자기 도전의식이 샘솟았다. 그러면서 바로 사이버경찰청에 들어가 절차, 응시자격, 시험 날짜를 알아보고 3월에 있을 시험부터 바로 시작하는 계획으로 하나하나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15년에 듬직한 아들 둘을 얻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지만 나날이 늘어가는 빚에, 이자에,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으로는 늘 부족한 살림살이에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임을 알지만 무엇이라도 시작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의미 없다고 생각한 이 한걸음이 나중에 내 인생에 어떠한 큰 걸음으로 남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라고 미화하고 싶었다.     


남편에 이어 아이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엄마의 행보를 알렸다. 당시 중3, 초6학년의 두 아들들은.... 배꼽 빠지게 웃어댔다. 이후 그들의 단골 개그 소재가 되었다. “아이고~~ 송순경 님~~~~” 하며 지들끼리 낄낄거렸다. 거실에 앉아 공부하는 엄마를 보면서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며 지나갔다. 당시 즐겨보던 <시그날>이라는, 과거와 현재를 무전기로 연결해 미제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의 범죄 수사물을 보고 있노라면 “범인 잡고 싶으세요~?”라며 또 한 번 깔깔깔...

나이 제한 때문에 내년까지 도전할 계획이니 내년까지는 맘껏 웃어대라고, "나 하나로 모두 재미있으면 됐다." 하면서 장난 말리는 일은 포기해버렸다. 사실 웃기긴 웃긴 일이었다.     

그즈음, 우연히 본 내 초등학교 2학년 때 일기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호재야~, 호진아~, 빨리 와봐~~. 완전 대박이다”

어렸을 적 내 꿈이 순경이었다니... 공시 응시가 갑툭튀한 행보는 아니었던 거다. 이때까지만 해도 운명인가 보다 했다.

   

시험을 두 달여 앞두고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이번엔 처음이니 시험의 유형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로 경험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다른 과목보다 덜 낯선 영어만 공부했다.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영어만 과락을 면하고 다른 과목들은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다.


당연히 떨어졌지만, 나에게 두 가지 큰 깨달음을 준 경험이다.

첫째, 무엇이든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막연히 생각만 하지 말고,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덕분에 디베이트를 만났고 전문가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내 도전과 노력이 아들들의 기억 어딘가에 의미 있게 녹아들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공부하는 엄마를 보며 그들이 받게 될 교육적 효과도 있을 것이리라...


두 번째는, 복잡한데....

'나이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거나, 타인의 몫을 빼앗지 말자라든가'... 하는 깨달음이다.

시험을 끝내고 교문을 나서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무 부담감도 없고 진중한 맘도 없이 쭐래쭐래 시험을 보고 나오던 내 눈에 비친 건, 교문밖에서 자신의 딸을 찾으려고 목을 빼고 서있던, 나보다 몇 살 더 많을 법한 부모님들이었다. 그들은 교문을 나서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젊은 아이들의 간절한 꿈마저 빼앗으려 하는 탐욕스러운 여자라며 욕하지 않았을까? 자괴감이 몰려와서 점퍼에 붙은 모자를 최대한 끌어 쓰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7명의 여경을 뽑는데 900명이 지원했다. 지원자들은 129:1의 경쟁률을 보면서 얼마나 낙담하고 절망했을까? 그 경쟁률 속에는 별로 간절해 보이지도 않고 전혀 준비도 안 한 '아무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다.

나로 인해 누군가 낙방하는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넘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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