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글보글 글놀이 - 밥 ->
"뭐 좀 먹었니?"
"배 고프니?"
"뭐 좀 해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만 마주치면 저의 입에서 나오는 마법 같은 주문입니다. 제방에 콕 박혀 누워있던 사람을 일으키고, 입에 달았던 지퍼를 열게 하며, 서먹했던 관계를 말랑말랑하게 해 줍니다. 식구(食口)란 한 지붕아래 살며 끼니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 나게 해주는 말.
"말하지 않아도 알~~ 아~~ 그저 바라보면~"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표현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저는, 귀찮고 힘들어도 식구들의 끼니를 걱정해 주는 것이 아내이자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애정표현이라고 믿습니다. 왜 그리 밥에 집착하느냐, 여자가 식구들 밥이나 챙겨주는 사람이냐, 우리도 밥에서 해방해야 한다며 못마땅한 속내를 드러내는 이들 앞에서도 저는 맞장구를 치지 못했습니다. 전 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내 손으로 차려주든, 배달시켜 주든, 외식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저와 함께 생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뭐라도 먹어 든든한 몸과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밥에 목숨 건 K 할머니의 특징을 재미있게 담은 영상이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배가 고프다고?>
손주사랑을 먹는 것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할머니,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대학교 때 농활을 가면 밥때마다 숟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눠 먹는 것입니다~~ 밥~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혼자 못 하듯이~~ 밥은 서~로 서로 함께 먹는 것입니다~ "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검색을 해보니 김지하 시인의 시더군요.
밥은 하늘입니다.
- 김지하 -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때로는 만족할만한 밥상을 차려내며 뿌듯한 날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변변한 찬 없이 끼니만 때우는 날이 있듯이 제게는 글 쓰는 일도 그러했습니다. 어떤 날은 만족스러운 글을, 어떤 날은 숙제하듯 꾸역꾸역 써낸 글을 발행했습니다. 매일 밥을 먹는 일이 거창한 일이 아닌 것처럼 글 쓰는 일도 특별한 이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 거창하지 않은 일이 나를 살리고 나의 매일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밥 하는 게 너무 싫다면서도 끼니때면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하는 수 없이 취사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글 쓰는 행위에 심드렁해져도 결국은 노트북의 전원을 눌러 무엇이든 써야 허기가 달래지는 브런치의 밥순이.
밥 먹듯이 글 쓰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에서 보글보글 찌개를 가운데 두고 함께 밥을 먹는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매주 차려지는 찌개는 같은데 먹는 방식이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누구는 밥 한 숟가락, 찌개 한 숟가락 먹으며 천천히 음미하는가 하면 누구는 밥그릇 한 귀퉁이에 찌개를 몇 숟가락 퍼와 쓱쓱 비벼 먹더군요. 누구는 찌개를 국처럼 밥에 말아먹는가 하면 누구는 국물대신 건더기만 건져 먹기도 하고요. 그렇게 매주 같은 소재 다른 느낌의 글로 밥상을 차리다 보니 15개월이 지났다네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제를 던져주시는 로운님을 따라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글도 하늘이자 사랑입니다.
"글~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글은 서~로 서로 나눠 쓰는 것입니다~~ 글~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혼자 못 하듯이~~ 글은 서~로 서로 함께 쓰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