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침에 기분 좋게 나갔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그랬다. 그날 아침,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강의 강행군으로 피곤하기는 했지만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피곤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새로운 주제로 토론하기 위해 새 모둠을 만들었으니 모둠장을 뽑아달라고 주문했다. 총 네 개의 모둠 중 세 모둠은 신속하게 모둠장을 뽑았는데 유독 그 모둠만 옥신각신 해결을 못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한 아이가 포효했고 다른 아이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으며 몇몇 아이들은 두 아이 사이에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사정을 묻는 나의 말도, 진정하라는 나의 큰 소리도 묻혔다. 동시에 나의 이성도, 묻혔다.
"도대체 그게 싸울 일이야!!!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모둠장 뽑는 일이 그렇게 싸울 일이야!!! 이런 언쟁이 반복되니까 계속해야 할 일을 못하고 시간이 지연되는 거 아닙니까. 이러다 보니 입안문도 못쓰게 되고, 입안문을 못쓰니 디베이트도 못하게 되잖아. 왜 다른 팀들에게까지 피해를 줍니까!!!"
나는 사태를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진정시켰다.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수업은 그대로 이어졌지만 이후로 줄곧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은 더했을 것이다.
그 반이 그날따라 소란스러웠던 것도 아니었다.
5학년 4개 학급 중 가장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반이었으며 지난 3번의 수업동안 진땀을 빼야 했던 반이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여려 명이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자기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또 여러 명이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 또 먼저 말한 여러 명이 너희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대거리를 했다. 그러면 나는 또 여러분 여러분을 여러 번 외치며 진정을 시키거나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사태를 진정시키곤 했다. '너무 조용해서 아무 말 안 하는 분위기보다는 훨씬 낫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는 것이 어디냐'며 소란스러움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했던 반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날따라 소란스러움에 경기를 일으킨 것일까.
싸움이 그리 격렬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는 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가만 놔두었다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중재를 하고, 스스로 화를 가라앉히고, 평화를 되찾고, 모둠장도 뽑아 마무리했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사회생활이니 자기들만의 규칙과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겨우 세 번 만난 내가 뭐라고 나서서 사태를 쉽고 빠르게, 폭력적으로 해결해 버렸을까.
피곤했을까?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었을까?
나도 모르는 안 좋은 일이 내게 있었나?
요즘 고등학교 수업을 좀 했다고, 깔끔하고 정돈된 수업을 하다가 정신없는 초등학교 수업을 마주하니 힘들었을까?
그날의 나는 뭐가 문제였을까...
그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나?
종일 시끄러운 속으로 수업을 하자니 이어진 다른 반에서도, 또 이어진 다른 학교에서도 흥이 나지 않았다. 날카로워진 마음을 숨기기에 급급해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선생으로서, 어른으로서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못내 아쉽고 후회됐다. 사과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음날 찾아가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다음 수업이 있는 일주일 후까지 기다리는 것 또한 나 자신을 위한 벌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
일주일 후 수업시간.
잔뜩 주눅 들었던 날 위한 배려였을까,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밝고 활기찼다. 마지막 시간이라는 사실에 제법 비장해져서 진지한 얼굴로 모둠끼리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지난 시간의 작은 소동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평소와 다르게 디베이트에 집중했으며, 평소에는 제시간에 끝내지 못했던 디베이트 실습을 시간 내에 충실히 마쳤다. 심지어 5주간의 수업을 마무리하는 짧은 멘트를 남길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오늘, 너무 고맙습니다. 매 순서마다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디베이트 실습에 집중해 주어서 고맙고 즐겨주어서 더 고맙습니다. 지난 시간, 모둠장을 뽑겠다며 작은 소동이 있었을 때도 사실 고마웠습니다. 서로 안 하겠다고 미루는 게 아니라 서로 나서서 해준 것은 그만큼 이 수업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텐데 몰라주어서 미안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5주간의 수업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6학년때도 디베이트 수업을 받고 싶다며 아쉬움을 전해주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왔다. 조금은 덜 무거운 마음, 조금은 더 행복해진 마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늘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