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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29. 2023

같이 좀 나눠 먹읍시다~

동네 친구가 열무를 줬다.

친구는 남편이 텃밭에서 길렀다며 각종 쌈채소부터 시작해 가지, 호박, 무, 배추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채소를 나눠준다. 원물을 받은 나는 그걸 가공해서 일부를 친구에게 돌려준다. 얼마 전에는 엄나무순을 땄다고 잔뜩 줬기에 장아찌를 담가 나누었다. 열무도 마찬가지다. 열무김치를 담글 줄 몰라 국만 한 솥 끓여 먹었다는 친구에게 맛있게 익으면 조금이나마 나눠주어야지 마음먹었다.


집 앞에 얌전히 두고 간 것들을 챙겨 들어와 다듬기 시작하는데, 이건 뭐 도통 남길 게 없어 보였다. 잎이란 잎은 모조리 벌레 먹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던 것.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다 버릴 수도 없고 어떤 걸 남기고 어떤 걸 버려야 되는 거야?" 하다가, "아차차... 이거 완전 무공해라 어쩔 수 없는 거지? 돈 주고 샀다면 상품성 없는 걸 팔았다고 욕하겠지만 이건 농약 한 번 안 치고 기른 거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거 참... 애벌레들도 너무하네. 같이 좀 나눠 먹지, 야무지게 많이도 갉아먹었네." 혼잣말을 잔뜩 해가며 눈 한 번  마주친 적도 없는 애벌레들을 타박했다. 처음엔 다 버려야 될 것들로 분류했던 이파리들을 모두 양푼으로 옮겼다. 이파리의 반은 벌레가, 나머지 반은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자연과의 공생이니 생태주의니 하는 말들이 떠오르며 스스로 꽤 대단한 환경운동가라도 된 기분이 됐다.


마트에서 산 잘생긴 감자를 갈아 푹 끓여 감자풀을 만들었다. 마트에서 산 쭉쭉 뻗고 윤기 나는 홍고추를 마트에서 산 흠집하나 없는 마늘과 함께 믹서에 곱게 갈았다. 마트에서 산 탱탱한 쪽파를 다듬어 깨끗이 씻어 적당한 길이로 썰었다. 흠잡을 데  없이 멀끔한 부재료와 구멍 숭숭 뚫린 열무, 얼갈이의 만남이 어색한데 재미있었다. 다 버무려놓고 보니 볼품없던 열무, 얼갈이가 아주 번듯해 보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인생 매한가지요, 같이 어울리다 보면 그놈이 그놈인 걸까.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하게 됐다.


며칠 후 잘 익은 열무김치는 무릎수술로 입원 중이신 어머님께 조금, 열무를 나눠준 친구에게 조금 전해졌다. 벌레와 나와 어머님과 친구가 함께 나눠먹는 열무, 얼갈이라니...


이 여름이 조금은 덜 더우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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