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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6. 2023

여름, 무더위, 살기, 독기, 그 어디쯤

"내가 오늘 너 꼭 죽이고 만다. 못된 놈 같으니라고.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나 원 참.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그런 짓 하고 너는 잠이 오디? 배 두들기며 이쑤시고 있었냐? 무슨 짓이 있어도 꼭 복수하고 말 거다."

씩씩거리며 밤새도록 한 손에 흉기를 든 채 돌아다녔습니다. 허공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고 입으로는 아무도 듣지 않을 말을 주절거리며...


"이것들이 어디 벌건 대낮부터... 세상이 아주 말세야 말세.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아주 혼꾸녕을 내줄 테다."

낮에도 흉기를 든 채 돌아다녔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무차별 공격을 했습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죽여도 죽여도 자꾸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화는 가라앉지 않고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아들의 몸 여기저기에 부어오른 상처를 볼 때마다 귀한 내 새끼 몸에서 피 빨아간 놈이라며 이를 부득부득 갈며 희번덕해진 눈으로 살기 가득한 채 그 모기 한 놈을 찾아다니는 저입니다.

배수구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음식 쓰레기를 수시로 갖다 버려도 어디서 자꾸 나타나 짝짓기를 하고 개체수를 늘려가는지, 지긋지긋한 초파리 때문에 독기가 잔뜩 오른 저입니다.


이런 내가 그들과 다를까.

해충이니까 얼마든 죽여도 괜찮다는 생각은 정당할까.

전기 모기채를 휘두를 때 나는 타닥 소리에 묘한 쾌감을 느끼는 나는.

괜찮은 걸까.

무더운 이 여름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다가 어쩌면 영영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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