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이 되어 주방을 뒤졌다. 고춧가루라고 생각하고 보조주방 싱크대 위에 던져두었던 검정 봉다리를 열어보니 닭고기가 얌전하게 들어있었다. 이틀이나 실온에 있었는데도 냄새 하나 나지 않고 멀쩡했다. 다행이었다. 냄새가 나고 썩었어도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노후생활을 농사와 양계로 보내는 아버지가 직접 잡은 닭이었다. 매일 한판의 계란을 생산해 내는 수십 마리의 청계를 키우고 계신데, 최근 닭들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럼 더 이상 알 못 낳는 닭들은 어떻게 하는데요?"라는 딸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난감해하며 "잡아주는 사람이 다 있지!"라고 얼버무리셨었다. 친구들과 함께 일구는 텃밭 수준의 농사와 양계지만 늘 궂은일은 아버지 몫... 닭을 싸주던 어머니는 "네 아버지... 닭 잡은 날, 밤새 끙끙 앓으셨어."라고 했다. 딸들에게 잔혹한 아버지의 잔상은 남기고 싶지 않으셨던가보다.
어머니는 김장 하라며 아버지가 직접 키운 배추 여섯 포기, 무 열개, 파 한아름을 싸주었다. 혼자 뭐에 삐뚤어져서 한참이나 연락도 없었던 못난 큰딸에게 말이다. "네가 얼마나 아팠으면 연락도 못하고 있었니. 평생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나 보다 그치?"라며 안쓰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파도 만날 사람 다 만나고 할 것 다 한 나쁜 딸에게 말이다.
독감을 앓고 일주일 정도 지나 아버지에게서 두어 번 전화가 왔었다. 스피커폰을 켜놓고 두 노인네가 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몸은 좀 어때. 목소리가 아직도 그러네. 얼마나 아프면 전화도 못했니 그래..."
죄송하면서 짜증이 났다. 내가 맘 편히 더 삐뚤어질 수 있게 못되게 나올 것이지 왜 저렇게 순진한 목소리로 내 걱정을 하는 건지.
닭볶음탕을 했다. 질기니까 꼭 압력솥에다가 해 먹으라던 어머니 말씀대로 했는데도 꽤 질겼다. 발골한 뼈는 감자탕 뼈만 했다. 뻣뻣하고 차가운 딸내미를 내내 걱정하고 사랑해 주며 든든히 버텨주시는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고 산다. 큼직하고 질깃한 고기를 힘겹게 씹으면서 상하지 않고 버텨준 닭에게 대신 고마워했다. 끝끝내 못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