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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27. 2023

헛헛한 해방감

해방됐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알아내던 탐문수사, 흔하게 구할 수 없는 장난감을 아마존 직구로 주문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날들, 들뜬 아이들을 가까스로 재우고 함께 잠들어 버릴까 봐 안간힘을 쓰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묘한 긴장감, 트리 밑에 몰래 선물을 놓아두면서 숨소리도 죽이던 조심스러움, 호기심과 기대, 환희가 잔뜩 묻어나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mission complete!'를 눈으로 외치던 젊은 부부의 호들갑에서...


이렇게 해방된 지는 한참 됐다. 아들들은 특별한 날이니까 더 오래 게임을 하고 나와 남편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괜히 더 여유롭게 즐기는 연휴다.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뜯어볼 선물도 없고 분위기 내주는 트리도 없다. 언제까지 부모 산타를 눈감아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떠다니지 않는다. 선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긴장감도 없다.



해방됐다.

불편하다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 앉히던 카시트, 목적지에 도할 때까지 이어지던 끝말잇기, 아이들의 울음과 무료함을 달래주던 간식 부스러기가 가득하던 자동차 안, 아이들 챙기랴 내비게이션 보랴 분주하던 운전자에서...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니 휴일이 평일에 있다는 것은 주중 근로자와 주말 근로자가 밥 한 끼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 되었다. 모처럼의 가족 식사를 하러 가는 월요일 낮, 두 아들들이 갈 때 올 때 번갈아 운전을 했다. 숙련된 운전자들이라 더 이상 불안함이 없다. 남편과 나는 뒷좌석에 앉아 손을 잡고 평온하게 두런두런, 때로는 시끌벅적 옥신각신 얘기를 나눴다.



영원할 것 같던 분주함, 번잡함이 가득했던 스무 해가 끝났다. 해방됐다. 그런데 가끔, 문득 그 소란스러움이 그립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집에 가기 전 인생 네 컷을 찍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네 컷 사진을 건지기 위해 화면 속 네 사람이 요리저리 자리를 바꾸고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취했다. 그 짧은 시간이 주는 영원할 것 같은 행복감이 나쁘지 않았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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