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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6. 2019

D-100 프로젝트 < D-43 >

< 일을 하는 법 >


8주간의 마을교사 양성 과정이 어제 수료식을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교육자원봉사를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일단 공식적인 일정은 끝이 났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일들도 끝은 있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져도 어느새 마무리가 코앞으로 다가온다. 

일단 시작하면 흘러간다. 문제는 '시작'이다. 시작이 힘들어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하염없이 '착수'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일을 '시작'해서 '끝'낼 때까지... 일이 주는 부담감과 중압감을 극복하려면...?


* Start - 도구를 집어 들어라.

10년 전, 전통음식 연구 전문가 과정의 졸업작품 전시회 때 제비뽑기로 맡게 된 작품은 '오징어 오림'이었다. 3시간짜리 수업에서 딱 한번 가르쳐주더니 작품을 만들어오란다... 황당하고 자신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시를 안 하면 졸업이 안된다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오징어 오림이란 폐백 이바지 음식 중 하나다. 혼례상에 장식처럼 놓여있다가 폐백을 드릴 때 안주로 활용하게 된다. 오징어 몸통으로 다알리아, 장미, 국화 등을 만들고 다리까지 활용하면 매화를 만들 수 있다. 오징어귀로는 학을 만든다. 하얀 분이 잘 일어난 비싼 오징어를 구입해서 가위로 자르고 접고 말고 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건 내가 딱 싫어하는 분야인데... 

전시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전혀 시작은 못하고 속은 타들어 갔다. 그림으로 필기해 놓은 노트만 뒤적뒤적거리기를 또 며칠... 


그러다가 어느 날, 식탁에 오징어를 펼쳐놓고 무작정 가위를 집어 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오징어 하나를 들고 필기대로 오려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주저하던 나는 어디로 갔던가? 거침없이 오징어를 오려대고 돌돌 말면서 무수히 많은 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선생님이 보시면 당연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닐 테지만, 난 오징어 오림을 해내고 있었다. 전혀 하지 못할 것이라 두려워 시작도 못했던 일을.

그 순간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 주저된다면, 그 일에 필요한 도구를 손에 들어라. 그리고 시작해라. 그러면 할 수 있게 된다. 요즘은 가위 대신, 컴퓨터 전원을 누르는 것이 내 일의 시작이다. 


* Process - 쉼 없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라.

어떤 일이든 어려움 없이 착착 진행되면 좋으련만, 하다 보면 이런저런 장애물들이 나타나고 그 장애물들을 처리하느라 일의 속도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늘 머릿속에서 다음 과정에 대해 구상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이렇게 계속 구상을 하다 보면 실제 일을 진행할 때 구상한 대로 착착 일이 진행된다. 생길 수 있는 문제 상황에 대해서도 고려해봤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다.

디베이트 전문가 과정 시절, 입안문 하나를 쓰기 위해 일주일 내내 그 주제에 대해 구상했다. 뉴스를 보거나 드라마를 봐도 머릿속에서는 주제와의 연관성을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보면 입안문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서론부터 결론까지 막힘없는 글쓰기가 가능했다. 

강의가 있을 때는,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널면서 혹은 운전을 하면서 계속 강의 순서와 내용을 구상한다. 어떤 책을 활용할 것인지, 어떤 동영상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둔다. 미리 고민한 덕에 컴퓨터를 켜면 바로 PPT를 만들 수 있다.


* Finish - 자신에게 충분한 보상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던 광고 문구처럼, 일이 끝나고 나면 그때그때 자신을 방전시킨다. 뒷정리고 뭐고 일단 충분히 쉰다.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몇 시간씩 실컷 핸드폰을 한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선사한다. 이 꿀 같은 휴식을 고대하며 일을 빨리 마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미루어봤자 내 손해다. 걱정되고 두려운 맘을 품고 있는 시간만 더 늘어날 뿐이다. 

일단 시작하고, 머릿속으로 계속 일하는 상상을 하면 어느새 일은 끝이 나 있다. 

말은 이렇게 효율적인 일처리를 하는 사람인냥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시간 강의를 위해 20시간을 준비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컴퓨터 앞에서 2시간 동안만 강의 준비를 했으니 효율적이었노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24시간 일에 대해 생각하고 사는 꼴이니 가장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졸업작품 전시회에서 선보인 오징어오림, 율란, 강란, 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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