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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7. 2019

D-100 프로젝트 < D-42 >

< 가족의 힘 >


11월 이맘때면 아버지와 조카의 생일 파티가 있다. 추석 이후 특별한 건수가 없으니 생일을 핑계로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자리다. 밖에서 간단히 먹자는 자식들의 제안에도, 늘 손수 밥상 차리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몸은 힘들지만 당신 손으로 만드신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과, 식당 대신 집에서 몇 시간이고 편히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픈 마음을 알기에 늘 집에서 모인다.


큰 아이는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며...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자책과 응원해준 가족들에 대한 송구스러움 때문이었으리라... 밥이나 한 끼 하고 오자고 다독여 함께 부모님 댁으로 갔다.


매년 돌아오는 조카의 생일은 나에게 깊이 각인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날이라 달갑지만은 않았다.

2009년, 조카는 예정일을 일주일여 남기고 태어났다. 동생의 산후조리를 해주기로 하셨던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면 당분간은 여행이 힘들 것 같다시며 예정일을 일주일 남겨둔 '하필 그 시점'에 여행을 떠나셨다. 첫아이라 일찍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하셨지만, 어머니의 비행기가 이륙하던 그 순간 아이는 세상에 나왔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그 순간, 나에게는 인생을 통틀어 잊지 못할 힘든 일이 벌어졌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게 해 준 전환점이 돼준 일이었지만, 당시 나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무척 궁금하시겠지만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하려던 얘기에 집중하겠습니다.) 이후에 정신과 진료를 받았어야 할 정도의 일이었으니 당시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들고 있던 그날 아침,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나 아기 낳았어~"

"뭐? 축하해~~ 아직 예정일 남지 않았어? 엄마 오늘 떠나셨지?"

정신없는 채로 채비를 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동생은 친정엄마만 믿고 산후조리원을 알아보지 않았던 탓에 갑자기 들어갈 곳이 없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인 나는 엄마가 안 계신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 자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속은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상황이었지만 동생의 첫 출산을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노릇... 동생은 우리 집으로 퇴원을 했다. 나에게도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으니 동생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이들 침대방을 산모와 아기의 방으로 준비해 놓고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가 내 두 번의 출산을 챙겨주던 기억을 떠올려 밥과 반찬을 차려냈다. 작디작은 아기를 목욕시키고 출산에 지친 동생 대신 아기를 돌봐주었다.


동생의 아기를 보면서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처음 만난 세상의 아름다움, 따뜻함, 행복함만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가진 슬픔, 분노,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라는 생각에 조카의 눈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안정적인 정신상태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 피어난 따뜻함만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가까스로 만들어낸 웃음을 보이는 것이 한없이 미안했다. 안방에 가서는 미친년처럼 있다가 산후조리방에 가서는 세상 따뜻한 보모가 되어야 했던 일주일간의 이중생활. 조카의 생일이 달갑지 않았던 이유였다. 달갑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미안했던 거였다. 태어나자마자 나의 깊은 슬픔이 옮겨 붙었을까 봐... 세상에서 가장 무결한 천사 같은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악마 같은 감정의 기운이 달라붙었을까 봐...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까칠해진 얼굴빛으로 나타난 손주를 버선발로 맞아주시는 어머니. 손주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앞에 놓아주신다.

오늘은 할아버지와 실컷 마셔보자며 '밸런타인 21년', '시바스 리갈 18년'등 아껴두었던 술을 내놓으시던 아버지.

아무리 마셔도 멀쩡한 큰아이를 상대로 질세라 마셔대는 세 어른과 그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 깔깔거리는 세 어른의 아내들.

재잘재잘 거리며 게임을 하는 조카들과 그 조카들을 챙기는 내 작은 아이.

거나하게 취한 어른들의 술자리 객쩍은 농담들을 들으며 발그레해진 얼굴로 함께 웃는 큰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면서 맘이 놓인 나.


이 시끌벅적한 장면을 보며 난 지난 10년간 날 묶어왔던 그날의 기억을 바꾸기로 했다.

천사 같은 조카에게 악마 같은 나의 감정을 전해주었다는 안 좋은 기억 대신, 내 가장 힘든 시간을 천사 같은 아이로 인해 버틸 수 있었다고... 조카가 그렇게 일주일 먼저 태어나 우리 집에 있어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거라고...


수능시험이 뭐라고 만신창이가 되어 나타난 우리 아이를 한마음으로 안아주며 행복의 기운을 전해준 가족들처럼, 10년 전 조카는 나에게 그리 해주었던 것이라고...

태어나자마자 불행한 기운을 받은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행복한 기운을 온 세상에 뿌려준 것이라고...

그래서 저리도 밝고 예쁘고 야무지고 똑똑한 거라고...

저리도 맘이 곱고 깊은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이 가족의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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