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Aug 31. 2023

'귀여운 욕망' 해소 여행

갑자기 떠난 대만 여행 둘째 날

- 대만 시골마을 한가운데에서 -

잠이 많은 작은 아들은 여행지에서도 늘어지게 잤다. 습관처럼 새벽에 눈이 떠진 나는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가이드를 믿고 다시 잠들었다. 9시가 넘도록 침대에서 뒹굴거린 여행은 처음이었다. 해가 떴는지 비가 오는지 알 수 없게 만든 암막커튼을 젖히자 '이 장면 하나로 이 숙소는 만점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풍경이 펼쳐졌다.


숙소를 나서며 다시 확인한 풍경에는 아름다움만 들어있지 않았다. 금광 채굴로 번성하던 100년 전의 영화를 뒤로 하고 작은 집들이 촘촘, 빼곡하게 들어찬 산 중턱의 허름한 시골 마을이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냈다. 관광지로 부상하여 오후에는 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이지만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는 고양이가 주인이 되는 한없이 고즈넉한 달동네. 셧터를 올리며 장사 시작을 준비하는 상인들을 구경하며 마을을 나섰다.


- 더워도 너무 더운... -

작은 아들의 여행 계획에는 패키지여행 단골 코스인 곳들이 없었다. 엄청난 양의 유물과 가치 높은 전시물로 유명한 국립 고궁 박물원, 중화민국 초대 총통인 장개석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부르즈 할리파가 개장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다는 타이베이 101등 대만 갔을 때 당연히 가야 하는 여행 코스를 아들은 과감히 버렸다. 그래도 엄마가 원하는 곳 한 군데는 넣어주었는데 그게 '예류 지질 공원'이었다.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의한 침식과 지각운동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기암괴석을 있는 곳이 궁금했다. 첫날 묶은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도 40분이나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기왕 대만까지 왔으니 보고 싶었다. 


공원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지만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니 '여왕 머리 바위' '귀여운 공주 바위' '촛불 바위' '버섯 바위'등 인간이 붙여준 작위적인 이름에 괜히 딴지를 걸고 싶어 질 만큼 더웠다. 얼마나 더웠냐면, 한국에서는 한여름에 선풍기를 틀어도 땀 한 방울 나지 않던 작은 아들의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겨울에도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큰아들만큼이나 땀을 흘리고 있는 작은 아들을 발견한 것이 이번 여행의 빅재미였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공간, 박물관, 생태 공원등에 시큰둥한 여행객은, 도대체 그럴 거면 비행기 타고 남의 나라까지 갔냐고 물어도 해줄 답이 없는 우리 둘은 근처 카페에 들어가 얼른 망고빙수부터 시켰다.


- 본격 먹방 여행 -

관광지에 딸린 이름 모를 가게에서 맛본 망고빙수는 우리나라 유명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절반밖에 안 되는 가격의 빙수 한 그릇은 벌겋게 달궈진 몸을 제대로 식혀주었다. 몸이 식었으니 또 걸었다. 15분 정도를 걸어 나가 타이베이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한 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들이 찜해놓은 우육면 맛집이었다. 대만에 도착해 처음으로 먹는 제대로 된 식사였는데, 맛도 훌륭했지만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우쭐해하던 아들의 표정이 더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호텔 체크인 후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타이베이 101에 위치한 딘타이펑. 대기시간이 한, 두 시간 된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다행히 20여 분 만에 들어갔다. 맛이야 당연했다. 집 떠나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 가족 생각이 나기 마련인데, 난 딤섬에 곁들여먹는 생강채를 보며 남편생각이 났다. 얼마 전부터 생강채 노래를 불렀던 그였다. 장어는 안 좋아하는데 장어에 곁들이는 생강채가 너무 먹고 싶다는 그의 엉뚱한 욕구. 한국에 가면 생강 좀 사야지 싶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젊은이들에게 핫하다는, 대만의 홍대라는 '융캉제'라는 곳에 갔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망고빙수. 아마 아들의 이번 여행 콘셉트는 망고빙수였던 게 분명하다. "난 무조건 한놈만 패!"라는 대사가 생각날 정도. 줄 서서 먹는다는 빙수가게도 우리 둘이 앉을자리는 있었다. 황홀 그 자체. 낮에 먹은 빙수는 단숨에 2위로 내려갔다.


- 귀여운 욕망 -

평소 물욕 없기로 유명한 작은아들이었다. 반년동안 쌀국숫집 아르바이트로 번 돈 수백만 원이 고스란히 통장에 모여있을 만큼. 그런 아들이지만 여행경비는 흔쾌히 냈다. 엄마를 위한 소비도 마다하지 않았다.

"엄마~ 대만 가서 엄마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 내가 사줄게. 거기도 체크카드 되나?"

"진짜? 명품백 같은 거도 사주나?"

"아... 엄마 여행 다니면서 컵 모으는 거 좋아하잖아. 컵 사줄게 컵."

엄마가 원한다면 컵쯤은 얼마든지 사주겠다는 마음이 고마웠다. 종일 걷느라 발이 아픈 엄마를 위해 편한 슬리퍼도 하나 사주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자식이 여행시켜 줬네, 자식이 뭐 사줬네, 용돈을 얼마 줬네'하며 자랑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 아들이 발을 못 떼던 매장이 있다. 아디다스를 구경하다가 우리 둘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킨 운동화를 발견한 것. 귀여운 아기코끼리 덤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는데,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 않느냐며 그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신고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끌린다며 살까 말까를 고민했다. 합리적 소비의 달인들은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라고 말할 테지만, 난 "사고 싶으면 사! 한국 가서 두고두고 생각난다."라며 아들을 부추겼다. 아들은 가져간 경비의 20%를 운동화 구입에 썼다. 합리적 소비였다.


둘째 날은 17,000보를 걸었다. 첫날 숙소와는 비교도 안되게 현대적이고 깔끔한 호텔에서 쾌적하고 안락하게 숙면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여행의 작은 기쁨, 조식뷔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다. 



지우펀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예류 지질 공원


오른쪽 맛집은 생망고가 잔뜩.


우육면 맛집의 시그니처 우육면 / 오른쪽은 뭔지 모르고 주문한 족발 국수....


딘타이펑



갑자기 떠난 아들과의 여행.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으로 묶어둡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다닭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