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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6. 2023

오지랖이 꼰대짓이다

"자기 그 얘기 들었어? 애들이 1월에 여행 간다던데, 숙소가 엄청 비싼 풀빌라래. 근데 교통도 안 좋고 주변에 볼 것도 없고 좀 그렇더라. 2박 3일 여행에 1인당 30,40만 원씩 내기로 했다는데 너무 비싸지 않아? 픽업서비스도 없는 숙소라 택시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데 10명이 넘는 애들, 택시비만 얼마야? 엄마들이 좀 얘기해야 하지 않아? 숙소도 앱에서 예약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더라고. 스무 살 애들이라고 바가지 씌운 것 같던데."

"그러게 말이야. 애들 수준에 너무 비싼 여행 아닌가? 우리 애도 돈 걱정하던데..."

둘째 아들의 친구 엄마들 모임에서 나온 얘기였다. 아들에게서 친구들과 여행 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묻지도 않았다. 알아서 가겠거니, 여행 갈 때 숙소 연락처나 하나 받으면 되겠거니 했다. 그런데 다른 집 엄마들은 그게 아니었다. 잔소리도 하고 조금은 개입도 해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아들에게 말을 전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과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작은 아들은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며 엄마들의 오지랖에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괜히 말 꺼냈다가 내가 여행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걸로 오해받았잖아. 우리는 스무 살이니까 바가지를 쓸 수도 있고 조금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바가지든 고생길이든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알게 되는 좌충우돌 여행에 '먼저 경험해 본 자의 조언'이라며 훈수질을 하려던 것이 창피했다. "그래~ 알아서 잘들 결정해~"라는 말로 더 이상의 개입을 거두어들였다. 엄마들 눈에는 한없이 어리숙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하나에서 열까지 쫓아다니며 가르쳐줄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어른들 눈에 보이는 몇 푼의 손해는, 그들 인생에서는 손해가 아니라 배움이고 자산이다. 그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대학 합격한 1월 말부터 지금까지 주말마다 쌀국수 서빙 알바를 해온 아들은 집, 학교만 왔다 갔다 하고 집에 와서도 내내 공부만 했다. 연애도 안 하고 돈 쓰는 일에는 관심 없던 아들은 10개월 아르바이트 월급을 성실히 모아 500만 원을 만들었다. 거기에 외부에서 받은 장학금까지 더해 천만 원이 찍힌 통장을 보여주며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런 아들인데, 나보다 훨씬 경제관념 철저한 아들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훈수를 두고 오지랖을 떨었을까. 



작은아들 앞에서 쪼그라든 걸로는 모자랐는지 큰아들에게도 한 소리 들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광고판에서 '경기도 청년 해외봉사단 모집'광고를 보았다. 1월 말부터 3주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교육봉사를 하게 되는데 항공, 숙박, 식비 모두를 지원한다고 했다. 방학을 좀 더 의미 있고 알차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들들에게 알려주었다. 작은 아들은 대여섯 개나 되는 자기소개서 문항을 보고 벌써부터 질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큰아들은, 무안할 정도로 쏘아붙였다.

"봉사는 무슨 봉사야. 나 살기도 힘든데. 시간이든 돈이든 내 상황이 쪼달리면서 봉사하는 건 아니라고 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렇기는 하지. 봉사를 이유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알려준 거야."라며 겸연쩍게 말꼬리를 흐린 나였다.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의 유무와는 상관없는 게 봉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봉사하는 삶을 강요한 적도 없다. 그저 엄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살기가 힘들어 봉사를 고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미안해졌다.

큰 아들은 이른 아침 일어나 등교를 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체대입시학원으로 출근해 학생들 등하원 라이딩과 입시반 지도를 한다. 10시가 되어서야 귀가를 해 늦은 저녁을 먹고 잠드는 일과가 매일 이어진다. 열정 페이가 더해졌을 얄궂은 월급으로 휴대폰 할부금을 포함한 한 달 용돈을 해결한다. 군대 갔다 오더니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쓰는 기특한 아들이 되었다고만 생각했지 안쓰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미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아들인데, 봉사니 뭐니 하며 더 열심히 살라고 오지랖을 떨게 뭐였을까. 


내가 더 잘 알고 내 방식이 옳다는 전제가 깔린 행위라는 의미에서 오지랖과 꼰대짓은 결이 같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관계만 망칠 뿐이다. 자식에게 하는 잔소리, 오지랖, 꼰대짓은 '사랑하니까, 가족이니까'라는 당위성으로 포장된 폭력이 되기 쉽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제동을 걸어야겠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심과 애정만 주어도 충분하다. 


한 줄 요약 : 가까울수록 잔소리를 줄이자.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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