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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21. 2023

어디서든 나만 잘하면 된다

11월에 있을 수행평가를 디베이트로 하겠다는 모 중학교 역사 선생님의 강의 요청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디베이트에 대한 기본 개념을 가르쳐달라고 하셨다. 1학기때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과 연계 디베이트 프로그램 연수가 효과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들어간 첫 수업이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이틀 전 중간고사를 마친 중 2 학생들에게 외부강사의 디베이트 수업은 잠들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1교시, 4교시, 5교시. 뒤로 갈수록 쓰러지는 전우들이 많아졌다. 여섯 학급 중 세 학급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허탈감이 밀려왔다.

'방심했다. 시험 직후의 중학생이라는 점, 한창 잠이 많을 시기라는 점, 외부강사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점을 잊었다...'

엎드려 자는 친구들을 더 적극적으로 깨우지 못했다는 것, 잠들지 못할 정도로 신나는 수업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주말 내내 나를 괴롭혔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중고등학생 대상 수업은 대체로 지원자 중심수업이었기 때문에 호응과 참여가 좋았다. 초등학생들은 자는 아이들이 없었다. 자더라도 눈치 주면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학생들은 관심사도 다양하고 개성도 다양하며 폭발적인 성장의 시기라 그런지 잠이 몰려오고 의욕은 팍팍 떨어지는 아이들이었다. 그것도 여섯 학급.  


"중2는 어쩔 수 없어요. 사탕을 입에 물려줘야 해요. 대답할 때마다 하나씩 주면 그나마 수업에 활기가 생겨요. 제가 애용하는 사탕이 있는데 그거 잔뜩 사들고 가세요. 아주 신 맛이라서 잠깐 잠에서 깨게 할 수 있어요."

어느 강사의 팁이었다. 사탕이나 마이쭈 같은 수업 강화물은 중2를 비롯한 10대 수업에 필수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이야기였지만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동물쇼의 조련사가 되어 '잘했어!'라며 먹이 하나를 입에 넣어주는 것 같은 나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간식을 챙기곤 한다. 디베이트 입안문을 쓸 때 학급 학생 모두에게 씹을 거리를 주는데 생각과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적극적인 대답, 참여를 유도하는 사탕, 젤리는 쓰고 싶지 않았다. 난 그런 것 없이도 수업을 이끌 수 있는 역량 있는 강사라는 걸 스스로 포기하는 장치 같았다. 알량한 자존심이지만 지키고 싶었다.


사탕에 대해서는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하다. 5년 전, 강의에서 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자신이 가져왔던 알사탕을 먹다가 목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벌어진 입으로 말도 못 하고 숨도 못 쉬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봤던가? 실습을 해봤던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의 등뒤로 가서 끌어안고 주먹 쥔 손을 아이의 가슴 가운데에 얹었다. 그리고는 힘껏 내쪽으로 끌어올렸다. 정확한 자세? 그런 걸 따질 겨를도 없었다. 하임리히처치법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커다란 알사탕이 튀어나왔다는 것. 그걸로 내 처치의 적절성과 성공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졌다. 아이의 무사함만큼이나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준 사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후로 알이 큰 사탕이나 너무 찐득한 캐러멜 같은 것은 절대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고가 나려면야 물을 줘도 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탕 없이도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수업 전날까지 고민했다. 식탁에 앉아 컴퓨터를 마주하고 끙끙 앓고 있는 나에게 작은 아들이 이유를 물어왔다. 고민을 털어놨다.

"내일 중2 학생들을 다시 만나는데 너무 걱정이야. 그 학교 1학년과 3학년 수업을 할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 얘네는 자도 너무 자. 고등학생들도 눈치 주면 일어나던데... 어떻게 하지? 네가 중학교 2학년 때, 도덕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너에게 고맙다고 했다던 게 생각나더라. 자지 않고 집중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잖아? 내가 딱 그 마음이었다니까? 그 몇 명의 학생들이 진짜 고맙더라."  

나의 말에 아들은 담담히 말했다.

"그냥, 엄마 하고 싶은 대로, 엄마가 하기로 했던 수업을 그냥 해. 엄마가 중요한 얘기를 해도 들을 애는 듣고 안들을 애는 안 들어. 엄마가 엉뚱한 얘기, 재밌는 얘기를 해도 마찬가지고. 딱 그럴 시기야."


Eureka!!!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지낸 나를 일깨워주는 한마디였다. 잘해야겠다는 생각, 한 아이의 낙오도 용납하지 않고 완벽하게 집중하는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아야 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한 아이에게만 가 닿아도 나의 시간은 의미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때가 있었는데, 그 마음을 잊고 욕심을 부렸다. 잔뜩 힘을 줬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힘들어하는 나를 여실히 보였으니 아이들 눈에는 그런 내가 우스웠을 수밖에.


어제와 그제, 다시 수업에 들어갔다. 힘 빼고, 내가 준비한 것, 내가 잘 아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풀어냈다. 첫 시간에 엎드려 자던 아이는 그대로 잤고 열심히 듣던 아이는 그대로 열심히 들었다. 잘까 말까 고민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허리를 세웠다. 샤프를 잡고 글을 썼다. 내가 내 할 일에 집중하니 아이들도 자신의 일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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