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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5. 2023

자신의 말버릇, 알아채셨나요?

"송 쌤은 뭘 맨날 '그러게요' 래요?"

휴대폰 저편에서 상대가 쏘아붙인 한 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의 억울함을 성토하며 누군가를 욕하고 있는 상대의 이야기에 제가 할 수 있는 반응이라곤 고작 "그러게요..."라는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었는데, 상대는 그게 꽤나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이야기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를 원한 것은 아닐 겁니다. 분명 자신과 한 편이 되어 함께 욕해주고 함께 억울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테죠. 하지만 철저히 제삼자의 입장에 섰던 저는 연신 "그러게요, 그러니까요."라는 말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전화상대의 화를 돋웠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자주 쓰는 말버릇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주 쓰는 단어, 표현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찾으려다 보니 말을 하면서 제 말을 다시 귀에 담아 곱씹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게요'와 '사실'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그러게요'는 주로 상대방의 말에 동조할 때 많이 썼지만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도 쓰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회피성 표현이었던 거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전에 시간을 벌어보자는 비겁한 수작일 수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고 있다는 추임새로 쓰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반복적인 사용은 상대에게 무성의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이후로 이 말을 쓰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사실'이라는 표현은 누군가에게 상황이나 이유를 설명할 때, 내 말이 신뢰할만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대방이 듣고 판단할 일일 텐데 그러기 전에 제가 먼저 나서서 이 말은 사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수작인 거죠. '얼마나 하는 말에 자신이 없으면 이 말을 군데군데 넣어 쓸까...' 하는 생각에 입에서 'ㅅ'이 삐져나오려고 하면 마른침과 함께 얼른 삼켜버렸습니다. 


말버릇에 대한 의식은 제가 하는 말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자주 대화하는 사람들의 언어습관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말버릇을 갖고 있더라고요.


*어쨌거나

지인 중 한 분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문장에 한 번씩은 이 표현을 섞어 쓰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조건들이 있지만 어쨌거나 이번에는', '그런 의견에 흔들릴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내가 생각할 때는' 등 여러 정황,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이렇다는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맥락상 필요한 단어이기는 했는데 한 번 귀에 꽂히기 시작하니 얼마나 잘 들리던지, 그럴 때마다 혼자 속으로 웃곤 했습니다. 

"평소에 '어쨌거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거, 혹시 아세요?"라고 물으니 지인은 전혀 몰랐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그 말을 듣고도 지인은 여전히 자주 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 그 뭐냐?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발표를 하며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입니다. 토론 중간중간 어떤 단어나 근거가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학생들은 저를 쳐다보거나 허공을 항해 "그 뭐냐?"라고 말합니다. 한두 명이 아닙니다. "굳이"가 청소년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에 맞서는 강렬한 대항마입니다. 

이 말을 누군가 사용하면 옆에 있는 친구들은 놓칠세라 장난을 칩니다. 

"왜 선생님한테 반말로 물어보냐?" 

그러면 학생은 당황하며 저를 쳐다보며 "그게 아니라 혼잣말이었어요."라며 "그 뭐냐?"를 말한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 뭐냐?"를 못 듣는 날은 서운하기까지 합니다. 


* 살짝

디베이트를 할 때는 명확한 단어 사용이 생명입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정확한 수치, 날짜등의 표현이 신뢰도를 높입니다. 그런데 디베이트를 할 때마다 '살짝'이라는 표현을 쓰는 학생이 있습니다. 애교 섞인 발언을 하려는 의도인 건지 어떤 여지를 남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발언 중간중간 "살짝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살짝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살짝 이해가 안 가는데 다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살짝 귀에 거슬릴 때가 있어서 말해주기는 했는데, 슬쩍슬쩍 여전히 사용 중입니다. 


그 밖에도 "솔직히 말해서"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 말을 시작할 때마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라는 사람, 말끝마다 "그렇잖아~ 내 말이 틀려?"라는 사람등 화자는 알지 못하는 반복적인 말버릇을 찾아내는 청자의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전히 저는 알아채지 못한 저의 또 다른 말버릇이 있을 것 같아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곱씹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버릇을 들으며 나는 저 말을 어떨 때 쓰는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말이 더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글에도 제가 모르는 저만의 글버릇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쓰고 또 쓰지만 말고 읽고 또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말버릇이 있으신가요? 알아채셨나요?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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