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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5. 2023

누군가 대한민국의 가는 길을 묻거든

< 토론 교육의 정석 디베이트 - 케빈 리 > 

"누군가 대한민국의 가는 길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OO을(를) 보게 하라!"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슬로건을 패러디한 문구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 말을 꽤 좋아한다. 서울대 출신인 그는 미국 생활 중 그의 가슴을 떨리게 만든 '디베이트'를 만났고 위 슬로건에서 '관악'의 자리에 '청소년토론스쿨'을 넣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5년 한국을 떠나 중국,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교육신문>을 발행하며 디베이트를 접했고 이후 2010년 귀국하여 지금까지 디베이트 확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토론대학의 학장이자 청소년토론스쿨의 교장인 Kevin Lee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쓴 그가 2013년 발행해 토론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입문 편』의 개정판이 나왔다. < 토론 교육의 정석 디베이트 >는 디베이트의 개념, 효과부터 진행 방법까지 익힐 수 있는 실전서가 되어 돌아왔다. 이 책 한 권이면 디베이트의 'd'조차 몰랐던 누구라도 디베이트의 매력에 빠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그가 2016년 설립한 한국토론대학 전문가과정의 1기 졸업생이다. 1년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주제에 대한 강연을 듣고 직접 디베이트를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나도 모르게 '아.. 재밌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입은 바짝바짝 마르며 손은 덜덜덜 떨리는 디베이트 시간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디베이트 수업에 쓸 입안문을 쓰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위해 지새우는 밤이 좋았다. 상대와 마주 서서 질문과 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 떨림이 좋았다. Kevin에게서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대한민국 곳곳에서 디베이트 수업을 했다. 부산, 이천, 목포, 진안, 서울, 용인...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 내가 경험한 즐거움을 나누고자 했다. 둘째 아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초보 디베이트 코치였던 엄마에게서 디베이트를 배운 아들은 엄마의 성장길에 늘 함께 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방학 때마다 디베이트 자원봉사를 다녔다. 주니어 코치가 되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디베이트를 가르친 것이다. 3일, 총 18시간 동안 이어진 디베이트 캠프를 마치고 나면 목이 쉬고 녹초가 되었지만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자신에게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꼬박꼬박 불러주는 '코치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들을 디베이트의 길에 머물게 했다. 동시에 디베이트를 가르치고 다니는 엄마의 곁에도 머물게 했다. 엄마가 누구를 만나 어떤 주제로 수업을 하는지를 늘 궁금해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대화는 깊고 풍부해졌으며 아들의 지난한 입시 과정에 도움이 되었다.


아들의 대학 입시과정과 결과로 나는 디베이트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 특히 디베이트를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배웠을 때 그 효과가 배가 된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왜 할까?"라며 아들이 기습적으로 질문을 해올 때, 정확한 답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함께 고민을 해줄 수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는 말 대신, "글쎄... 공부의 의미가 뭘까? 그러고 보니 엄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 넌 뭐라고 생각해?"라며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수행평가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했고 물리, 화학 책은 외계어로 쓰인 것 같아 읽을 엄두가 안 나는 엄마였지만 희망 전공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주제를 뽑아내는 일에 브레인스토밍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었다. 예를 들어, 심화수학 교과에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수학적 모델링'이라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마침 동네에서 문제가 되었던 데이터센터 건립 문제를 제안했다. 관련 논문을 검색하고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의 다기준평가기법을 모델링하기까지, 답답해하는 아들의 곁에서 내내 가이드를 해주었다. 디베이트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와 아들의 진중한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인내심을 갖고 자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켜봐 주는 일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아들과 나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디베이트가 가져다주었다. 디베이트가 만족할만한 입시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더 많은 학생과 부모들이 디베이트를 경험해 보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이들이 많아질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달라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작은 아들이 Kevin의 책에 추천사를 썼다.


저자는 서재필 박사를 향한 헌사로 책을 열었다. 서재필 박사가 미국에서 수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조직한 협성회, 그 창립총회 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디베이트가 진행됐다고 한다. 이후 독립협회에서 34차례에 걸쳐 디베이트가 이어졌다. 첫 주제였던 '국한문 혼용'을 비롯해 시대 현안을 디베이트 주제로 다루면서 우리나라의 개화와 독립에 이바지했음을 잊지 말자는 것. 저자가 헌사를 올린 이유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디베이트 역사에 서재필 박사가 있었다면 21세기초에는 Kevin Lee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에게 디베이트를 배운 코치들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디베이트를 전하고 있다. 디베이트를 통해 교육의 변화,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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