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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2. 2019

D-100 프로젝트 < D-37 >

< OO년생 OOO >


곧 영화관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보러 갔다. < 82년생 김지영 >

책이 나오던 순간부터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 돌아가신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대만,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원작 소설. 개봉 전부터 1점 평점을 매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본 후 반응들은 전쟁 같았다.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딱 내 얘기다."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많은데 여성을 온통 피해자처럼 그려놓은 것 같아 여자로서 불편했다."

"남성도 여러 면에서 차별받는다."

"62년생 김지영이면 좀 이해가 가겠지만 82년생이 무슨 차별을 그렇게 받았나?"


여성차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면 위로 드러내게 하고 사회적 이슈로 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반응이지만  '페미니즘 영화다', '여성에게는 일반적인 삶이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울었다. 그것이 여성이 받아온 차별의 문제에 공감해서였는지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무조건 반사 같은 눈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지영이 반찬통을 켜켜이 쌓아 냉장고에 넣는 모습에서 눈물이 났고, 잔뜩 개어놓은 빨래를 끌어안고 서랍에 정리하러 가는 장면에서 슬퍼졌다. 세탁기 옆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나,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달리는 장면에서 공감이 갔다. 누군가 들으면 뜬금없는 장면에서의 눈물일 수 있다.


딸만 둘이었던 우리 집에서는 남녀차별이 일상적이지 않았지만, 송 씨 가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사촌동생에게는 조금은 달랐던 대우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아들이었기 때문인지, 가장 어렸기때문인지, 가장 힘들게 살았기 때문인지는 경계가 모호하다. 항상 아버지가 식사를 시작하셔야 우리도 밥을 먹었지만, 그것이 장유유서 때문인지 남존여비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을 막고 엉뚱한 짓을 일삼던 각종 바바리맨들이나, 만원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피하던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더듬어대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느낌은 선명하다. 지하철로 통학하던 대학시절 책 보며 앉아있는 내 옆에 앉아 가슴에 손을 대던 남학생도 기억한다. 그것은 차별의 역사라기보다는 공포의 역사였다. 물론 그런 공포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밖에 안보는 차별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본 장면이 다여서 '그렇구나...'정도밖에 할 수있는 리액션이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만큼, 자신이 아는 수준만큼의 차별과 공포에 공감할 것이다. 자신과 김지영이 오버랩되는 그 어떤 지점에서 눈물이 날 수도 혹은 실소가 나올 수도 있다.


실제 82년생 김지영이지만 영화 속 김지영에게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 김지영도 있을 수 있다. 92년생, 02년생이지만 "맞아, 맞아"하며 맞장구를 칠 수도 있을 테지...

공유 같은 남편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신의 고충을 들어주지도 않는 남편 때문에 이중, 삼중고를 겪는 사람도 으니... 또는, 얘기는 잘 들어주는데 얼굴이 공유가 아니라고 할 수도...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공유보다 더 잘 생겼는데 아내의 마음까지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시댁과의 문제에 있어서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남편도 존재한다.

김지영처럼 따뜻하고 눈물겨운 엄마가 있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차갑고 냉정한, 자기밖에 모르는 엄마를 경험했다면 공감이 안 될 것이다. 시어머니와 친모녀처럼 지내는 며느리들은 "우리 시어머니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 할 것이고, 극 중 시어머니가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료 여사원들의 화장실 영상을 아무렇지 않게 즐겨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여성에게 만연한 일상의 공포를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이들도 있을 테고 유난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자만 가득한 가정에서 살아 오히려 자신이 피해 보는 것이 많다는 이도 있을 테고, 남자로서 당연히 누렸던 것들에 대해서 인식조차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경험치밖에 알지 못한다.

어떤 영화든 모든 관객의 호응과 감동을 얻어낼 수 없는 것처럼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다수의 여성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그렇지 못하다 해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 이슈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바로 사회운동으로 연결되고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개별 삶들의 스팩트럼이 너무 방대한 것 아닐는지... 분명 관통하는 공통된 정서도 있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도 존재하지만 인정을 강요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알릴 수는 있다.

세상에는 80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수만큼의 <OO년생 OOO>가(이) 존재한다.

그 80억 개 스토리 하나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것.

그 김지영과 교집합을 이루는 수많은 OO년생 OOO들이 있다는 것.


조금은 다른 이야기...

며칠 전 <국민과의 대화>를 보다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던 장면이 몇 번 있었다. 대체로 자신을 소개할 때 "어디에서 온 누구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 누구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달리, 몇몇 분들은 "어디에 사는 아이 엄마, 워킹맘 누구입니다."라고 했던 것.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소개였을 수도 있다.

'질문 자체가 워킹맘의 여부와는 관련 없는 것임에도 그렇게 소개한 것은 왜일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는 얘기다. 아이가 있는데 일까지 하는 사람이라 더 힘들다는 것을 토로하는 것인지, 능력 있는 사람이니 내 말에 더 신뢰를 가지라는 것인지, 아이 보면서 집에만 있는 여자는 아니라는 것인지...

여성 스스로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다. 그들의 의도와 고민을 알지 못하는 내가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렇게 누군가의 자기소개 한마디에도 예민해지는 나를 보니, 영화가 던지는 파문과 갈등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눈물 범벅에 퉁퉁 부은 얼굴을 추스리던 나는 동행한 친구에게 말했다.

"밥 하러 가자..."

나는 77년생 송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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