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운동화를 닦았어도 저렇게는 안 될 것 같은 칫솔. 큰아들의 것이다.
바꾼 지 며칠 안 된 새 칫솔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처참한 몰골. 아들의 치아는 남아났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십수 년째 봐왔지만, 적응이 안 된다.
최근 들어 불편한 타인(들)이 있었다.
불편한 감정이 켜켜이 쌓이더니 사소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반복되는 갈등에 불편은 불만으로 모양새를 고쳤고 말은 점점 뾰족해졌다. 심지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끊어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나에게 상대라고 부드러울 리 없었다. 공적인 관계이니 서로 죽자고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들도 그랬을 테다.
불편한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했다. '반드시 친절하게'라는 지인의 조언대로 했다. 나의 말을 들은 상대도 솔직한 심정을 차분히 얘기해 주었다. 덕분에 처참한 몰골을 면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나를 향한 메시지를 적어둔다. 제발 조심 좀 하라는 경고다. 최근 변경한 문장은,
"관대해지자. 나의 평온을 위해."다.
상대에게 관대해지는 길만이 내가 살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며, 끊임없는 자기 검열의 늪에 허우적대는 것이 타인을 향한 끝 모를 미움을 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들의 칫솔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 아들에게 물어보니, 칫솔질하다가 한참을 멍 때리며 잘근잘근 씹는 습관이 칫솔을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최소한, 쌍방이 물어뜯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