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었던 독일이 다시 폐허로부터 복구되고 있던 시점에 독일을 바라보던 영국과 프랑스의 시각 차이는 양국 간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당시 연합국 통제위원회는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 168~169조에 따라 독일의 군비 축소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는 자연스럽게 독일의 재무장 분위기에 우려를 표시했고 프랑스 정치인 ‘에두아르 에리오(Edouard Herriot)’는 “독일이 10년 안에 다시 전쟁을 걸어올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대부분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 특히 프랑스 정치인들이 독일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스스로를 유럽의 일부라기보다는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을 선택한 독립된 섬나라라는 영국 정치인들의 인식이 군사 재무장을 추진하는 독일을 바라보는 양국 간 견해의 불일치를 초래한 것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이러한 영국의 태도에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위원회에 참가한 일부 영국 측 위원들은 독일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프랑스의 입장에 공감하기도 했다. 영국 위원 중 한 명인 ‘존 모건(John Morgan)’ 장군은 독일이 특히 군사 부분에 있어서 전쟁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고 비공식적으로 보고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바이마르 육군성의 보고를 조사할 때마다 보고서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독일의 파렴치한 위반 사실들을 기록한 연합국 통제위원회의 보고서는 발표되지 않았다. 당시 독일주재 영국 대사인 ‘다버넌(Edgar Vincent D’Abemon)'은 독일에 우호적 성향을 보이며 유화정책을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독일이 조약의 의무를 회피하고 이를 감추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는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독일 회사들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 터키, 핀란드, 네덜란드, 스페인 등지에 설립한 지주 회사와 스웨덴에서 탱크와 대포를 개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회사들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자신들과 국경을 맞대고 언제 부활할지 모르는 독일의 위험에 대해 바다 건너 영국인들이 보이는 무관심한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는 1922년 4월 16일 독일이 소련과 ‘라팔로 조약(Treaty of Rapallo)’을 체결하자 우려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 협정의 목적은 국제연맹에서 고립된 두 나라의 우호관계에 관한 설정이었다. 또한 이 협정의 은밀한 목적 중 하나는 독일이 러시아와 무기 합작 사업을 확대하고 거기서 독일인 조종사와 탱크 승무원들을 교육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당시 동유럽의 프랑스 동맹국이던 폴란드에도 불길한 징조를 예고하였다. 프랑스와 폴란드의 우려대로 역사적으로 폴란드에 적대적이던 독일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마침내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이 조약에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다는 비밀 의정서가 첨부되어 있던 것도 나중에 드러났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 전쟁의 결산이랄 수 있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프랑스는 전쟁보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선호하는 온건파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부 강경파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쪼개 놓지 않았다. 그들은 독일의 재건 이후에도 프랑스의 국력이 독일에 비해 다시 약화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했다. 게다가 머지않은 기간 내에 독일이 국가조직의 재건, 산업 생산력의 증가, 강한 국민의식의 향상을 꾀하며 독일 제국의 영광 재건을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들이 적의를 품기보다는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인 자신을 대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독일 제국이 1차 대전이 끝나고 주변국들에게 약속했던 평화에 대한 언약은 히틀러의 군대가 체코를 무력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허튼 약속이 되었다. 앞선 전쟁 못지않게 2차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더 큰 피해를 가져온 인류의 재앙으로 역사 교과서에 기록되었다.
최근 북한의 거침없는 미사일 발사와 도발 행태가 도를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북한 김정은 정권은 러시아, 중국과 긴밀한 정치 군사 경제적 유착을 통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에서 신냉전 시대를 여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대만과 필리핀 해협을 둘러싸고 중국이 미국과 대치 국면에 접어드는 가운데 김정은 정권은 러시아와 중국의 상황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며 몸값을 올리며 긴장을 주도하고 있다.
과거 선대의 유훈 통치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구상을 현시점에서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의 판단과 행동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국제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예측이 가능하다. 최근 김정은과 푸틴의 상호방문을 포함한 밀착관계는 그런 예측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입으로 평화와 유화를 주장하기보다는 강력한 대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거듭된 경제실패와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던 당시 우리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던 경제 및 군사적 우위 속에서 북한을 통제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유화정책을 통해 김 씨 일가의 세습을 사실상 도운 정책을 탄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언급한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이해당사국들의 서로 다른 판단이 또 다른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초래한 교훈을 보며 우리가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를 방관하거나 우리의 안보를 미국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자강(自强)의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국제정치사를 살펴보면 대개 오판은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오판의 결과가 가져온 재앙의 피해는 늘 온전히 힘없는 국민들의 몫으로 남는다는 데 이견이 없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가 7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남쪽도 동서로 나뉘어 미국과 중국의 편에 서겠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우리에게 작금의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아우르는 리더십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그들에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북한이라는 거짓말쟁이, 중국이라는 거짓말쟁이, 러시아라는 거짓말쟁이, 일본이라는 거짓말쟁이, 미국이라는 거짓말쟁이 중 누가 과연 우리의 안보와 경제,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 재앙을 가져올 대상인지를 구분할 능력이 있을까?
선거가 끝난 후, 그들은 자아에 도취되어 우리 국민이 처해있는 안보위기를 자신들이 활용할 도구로만 인식하는 얄팍한 정객으로 되돌아가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