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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Jun 06. 2024

스무살 젊은 죽은 군인이 남긴 슬픔

(2024년 현충일)


“괜찮으면 담배 한 개비만 얻을 수 있을까요?”

옆에 있는 젊은이는 벌써 머리칼 상당수가 희끗해진 나를 다소 언짢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표정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해요.

저기 있는 친구에게 담배 한 모금 먹게 하고 싶은데

내가 담배를 피우질 않아서 가져오지를 못했네요. "


얼굴을 돌려 친구가 누워있는 묘비를 가리키자 젊은이의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내게 공손하게 건네주며 불까지 붙여주었다.

나만큼 내 친구도 고마워했을 것이다.



햇볕이 한 여름처럼 따가운 6월 6일 현충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오전에는 고관대작들이 요란한 발걸음을 했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다리를 저는 노인들이, 혹은 허리가 구부러진 노파들이 꽃 한 다발을 든 슬픈 표정을 한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든 걸음을 했다.



가족 중 오래전 하늘나라로 떠나간 누군가를 보기 위해. 혹은 나같이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전우를 보기 위해.


묘지 하나하나마다 사람들 간 인연과 세상의 사연이 없는 이가 없다. 그냥 하루를 슬퍼하기에는 혼령들의 아픔이 너무 큰 탓일까. 현충원은 뜨거운 볕 아래에서도 망자들의 비통함이 짙게 드리운 무거운 대지가 되어 버렸다.




오래전 친구를 만나러 와서 썼던 글입니다. 

스무 살 젊은 군인이 남긴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친구를 만나러 왔습니다.

오래전 부대에서 같이 근무했었지요.


하사 최*배.

사병으로 있다가 보병분대장으로 차출되어 내무반장을 하던 참 착하고 겸손한 친구였습니다.


"사고로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을 가족에게 전하러 떠났던 인사선임하사관은 이미 그가 깨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아무도 찾지 않는 연병장에 세워둔 빈소를 사흘 동안 동료들과 지키고, 벽제에서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래도 견뎌보려는 아버지의 힘없는 얼굴.

졸지에 아들을 잃고 넋이 나간  어머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어린 여동생의 슬픈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내일이면 찾아올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늘 이렇게 이른 걸음을 하곤 합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인데도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여긴 친구들이 많아 덜 외로울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은 무심해서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 우리 나이 겨우 만 스무 살.

남은 삶도 친구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친구도 지금쯤이면 평생 자식을 그리워하다 세상 떠나신 부모님과 천국에서 다시 반갑게 상봉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이렇게 수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군복 입은 자의 죽음은 늘 남은 사람들에게 슬픔으로 남겨지는 게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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