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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Oct 09. 2021

버지니아 울프의 적은 누구인가?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작품과 행동을 통해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에 저항하며 페미니즘을 역설한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울프가 살았던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 기간을 일컫는 시기(1837-1901)로 영국이 산업혁명의 성공 이후 상업 활동을 통해 획득한 온갖 자원과 생산품들을 바탕으로 번성하던 기간으로 대영제국을 형성한 시기이기도 했다. 


제국이 한창이던 당시에 지구의 1/4 지역에서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 펄럭였지만, 같은 기간 영국 인구 150만여 명이 작은 섬에서의 지루한 일상과 음습한 풍광만 늘어져 있는 고향을 떠나 신대륙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남아프리카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대영제국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식민지 쟁취를 위한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전쟁은 남성들이 전유물이었으니 당시 영국 사회 내에서 남성들의 권위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다행히 빅토리아 시대는 시민계급의 형성과 중산층의 증가로 인해 사회 내부에서 정치, 사회적 개혁이 자유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런던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울프는 당시 친오빠가 재학 중이던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지성인들과 런던 소재 자신의 거처인 블룸스베리에서 독서토론과 사회비평을 위한 차 모임을 수시로 가지며 여성의 권익 신장과 사회참여를 위한 진지한 논의의 시간을 갖곤 했다. 


모임에는 영국의 지식인과 예술가들, 학자와 비평가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자유로운 이성(理性)과 지적 탐구를 통해 기존 사회에 만연한 형식주의를 타파하려는 개성 있는 모더니스트로서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지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 분야의 개척자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다.


소설가 포스터(Edward Forster), 화가 그랜트(Duncan Grant), 벨(Vanessa Bell), 미술평론가 프라이(Roger Fry), 전기 작가 스트레이치(G. Strachey)는 물론 훗날 저명한 경제학자가 된 케인즈(John Keynes)도 정기적으로 참석했는데, 이들이 모이는 런던 중심가인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근처 동네의 이름을 본떠 ‘블룸스베리 모임(Bloomsbury Group)’이라고 불렸다.





울프는 13세 때 모친이 사망하고 22세에 문학평론가이자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부친마저 사망하면서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의붓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남성과 결혼, 아기에 대한 혐오감을 갖도록 만들었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가하도록 만든다. 


그녀는 여성론을 강조하며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나만의 방, A Room of One’s Own》(1929)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난해한 모더니스트’, ‘신경쇠약증에 걸린 지식인 심미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으며 울프는 사회에 팽배한 권위를 조롱하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규범을 거부하며 남성들의 불필요한 권위, 명예욕 등과 싸웠다. 마침내 그녀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59세에 강물에 투신자살함으로써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오래전 이런 울프의 생애를 읽으면서 여성들의 적은 늘 남자인 줄 알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다른 종(種) 보다 가장 밀접한 접촉 생활을 하면서도 남녀는 늘 갈등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남자들의 게으른 천성과 쓸데없는 고집, 그리고 단순 무지한 행동과 고민 없는 추진력에 수십만 년 동안 지긋지긋해 왔다. 


남자들도 여성들의 쓸데없는 간섭과 잔소리, 그리고 속내 모를 흉계와 다 알면서도 시침 떼는 얄미운 습성을 못마땅해 왔다. 서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남자는 잘난 여성이 나가서 사냥을 해오라고 화살을 바닥에 던져댔고, 여성은 애들을 키워보라고 아이들을 남자 쪽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녀는 연애를 했고 결혼했으며 아이들을 낳았다. 지구 상 생물들의 것 가운데 유일한 창작물인 사람이 쓴 소설과 시는 인간 삶의 이면에서 아주 짧은 시간 행복했던 찰나를 묘사하며 사랑을 노래했고 또 사랑을 받았다. 모순되는 상황이 모순을 반전시키는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물이나 식물이 인간은 참 이해 못할 피조물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선거에서 흥미 있는 싸움을 목격했다. 싸움의 진수는 구경하는 데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예상했던 남녀의 대결이 아니었다. 한 장의 ‘여의도城’ 입장권을 놓고 나경원과 이수진이 붙었다. 한쪽은 이미 수차례 의정 경험이 있는 여린 외모와는 달리 대단한 전사였고, 다른 한쪽도 감히 담대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당찬 인물이었다. 


그들 누구도 아쉬울 게 없는 스펙의 소유자들이며 국가나 사회에서 보면 참으로 귀한 여성 자원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념이 밀어내는 공간에서 맞붙었고 남자들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웠다. 한쪽의 흰색 운동화가 검어지고 바지가 헤지도록 싸웠으니 나머지 한쪽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구경꾼으로서는 참 대단한 결투를 목격한 셈이다. 


살면서 보니 여자의 적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깨닫는다. 혈기 왕성한 젊은 사내들조차 군대라는 공간에서 절대로 티격태격하지 않는다. 조직이 갖고 있는 위계질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시 적과 싸워야 하는 조직의 특성상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전쟁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명령에 복종하는 문화가 묵시적 동의하에 유지되는 것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들 간에 그토록 엄격한 질서가 존재하는 줄 미처 몰랐다. 그것을 ‘태움’이라고 부른다. 병원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용어인 줄 알았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힌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원에서 후배들을 통솔하는 데 그토록 살풍경한 질서가 필요한지 정말 모르겠다.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자살을 선택했을까.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자신의 상관이 남자일 때 일하기에 더 수월하다고 말한다. 엄격하기로야 남자들 성향이 더 강할 텐데 그 틈을 파고들 여지가 여자 상관보다 더 넉넉하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여성은 상대 여성의 무엇을 의식하며 전의를 불태우는지 궁금하다. 





남자들은 권력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권력의 하부구조인 경제력, 승진, 명성, 명예 등이 권력을 갖게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수많은 전쟁은 지도자인 남성의 권력 욕구가 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제국이 등장하고 지역의 명멸도 권력의지의 부산물이다. 강대국에 기대려는 약소국가의 전략, 독재자의 장기집권이나 부패도 권력 오남용의 결과다.


여성은 남자에 비해 권력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무엇을 놓고 서로 싸우는가. 미모야 타고나는 것이니 투쟁의 산물이 될 수 없다. 경제적 부를 성취하려고 여성들끼리 음모를 꾸미고 잔혹한 행동을 한다는 사례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과거에는 권력자인 남자를 독차지하려고 그랬다지만 요즘엔 그것도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인권과 권위가 비약적으로 신장하면서 넓어진 여성들의 안목에도 자신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여성들이 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남성들의 입장에서야 여성들의 적대감이 목표를 달리하는 게 싫지는 않지만 남자를 대하는 여성들의 단결과 전투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는 사실로 인해 늘 불안감을 느끼며 지내는 나날이 웃픈 현실이다.





여성 모더니스트 작가로 역사적으로 여성을 배제시켜온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은유와 풍자적 어조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 버지니아 울프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날 여권의 신장으로 인해 여성 대 여성의 갈등도 놀랄 만큼 증폭되는 양상이지만 아직은 요원하다고 생각할까.

‘코로나19’가 풀리고 평화가 찾아오면 런던으로 달려가 ‘타비스톡 광장(Tavistock Square)’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동상 옆에 앉아 물어볼 일이다.





(사진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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