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 “세계 최초로 탄소 네거티브 맥주가 탄생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맥주를 만들면서 내뿜는 탄소를 계산해보니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나무를 심어 그 탄소들을 공기 중에서 없애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됐죠.”
영국 스코틀랜드에 강남구 면적에 육박하는 부지를 사들여 대형 숲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영국 맥주 회사 ‘브루독(Brewdog)’ 공동 창업자 마틴 디키(Martin Dickie)의 말이다. 올해 38세.
“우리 어른들이 충분히 지구와 자연환경을 즐긴 것처럼 우리 아이들, 손자, 증손자들이 살기 좋은 자연에서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후손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하겠다는 데 누가 반대를 하랴. 열혈 환경주의자들이 목소리 높여할 얘기를 맥주회사 오너가 대신한 것이다.
이를 위해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였고 맥주를 만들 때 쓰는 홉을 운반하는데 쓰이는 연료를 줄이기 위해 홉 농장 근처로 양조장을 옮겼다. 만들어진 맥주를 배송할 때 쓰는 트럭도 전부 전기트럭으로 바꿨다.
다 후손들을 위해서란다. 이 아이디어에 영국 시민 20만 명이 동참해 376억 원을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했다.
디키는 ‘지루하고 맛없는’ 영국 맥주에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며 2007년에 친구 제임스 와트(James Watt)와 맥주회사를 창업했고 제품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독재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조롱하는 맥주를 만들어 크렘린 궁에 보내기도 하고, 왕실의 윌리엄 왕세손(Prince William)과 케이트 미들턴(Kate Middleton)의 결혼식에 맞춰 비아그라 성분이 들어간 맥주도 만들어 냈다.
세상이 심심한 젊은 세대가 이들에 열광했다. 그러자 다 같이 “건강한 지구를 위해 조금씩 노력하자”라고 캠페인을 벌여 탄소 네거티브 맥주의 탄생을 알린 것이다. 생각이 기발하고 창의적이며 전략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림도 지난해 사차 자프리(Sacha Jafri)라는 인도계 영국 화가에 의해 완성되었다. ‘인간성의 여정(The Journey of Humanity)’이란 제목의 그림은 농구장 4개 크기로, 캔버스에 그린 역대 최대 규모 그림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코로나로 봉쇄된 7개월 동안 하루 20시간씩 작업하며 물감 5,300리터, 붓을 1,065개 사용했다는데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 취지에 공감하는 호텔이 작업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전 세계 140국 어린이들이 보내온 수천 점의 스케치와 드로잉을 인쇄해서 빈 캠퍼스 위에 붙이고 덧칠을 해서 완성한 작품은 경매에서 700억 원에 낙찰됐고 세상에서 넷째로 비싼 생존 작가의 그림이 되었다.
“어린이들의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다줄 뭔가를 창조하고 싶었다.”는 게 창작 의도였다.
조금 비슷한 느낌이 난다. 작업을 주도하되 신선한 아이디어로 후원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고 작품(혹은 상품)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는다.
2차 산업혁명, 3차 서비스산업 혁명을 모두 주도적으로 운영했던 영국이 또 다른 국가발전을 모색하며 내건 ‘창조경제’의 아이디어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드러난다.
새로 공장을 짓거나 관념이나 인식의 틀을 뒤집지 않고 기존의 것을 되살리는 아이디어로 국부를 창출하는 것. 창조경제는 1997년에 집권한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Tony Blair)의 ‘영국 살리기’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이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까지 도달했지만 뭐든 원조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진리를 확인시켰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라는 말이었다. 어떤 문제든 ‘네 생각은 무엇이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남과 다른 독창적인 생각. 평가는 그것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늘 고민하고 머리를 짜내야 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문제의 핵심을 자신의 판단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확신과 존재감. 그래야 계절을 무심히 보내듯 사회의 일시적 조류에 덤덤하고 유행에 민감한 대신 ‘레트로(retro)’에도 당당하지 않을까.
영국 교육의 핵심은 창의성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른)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해보았니?”
친구들과 구분되는 창의적인 내용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보았냐는 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대하는 영국 엄마 질문의 의도다.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일상적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던지는 우리의 질문과 많이 다르다.
세상의 이치, 규범, 가치관, 상식 등을 놓고 무조건 따르기보다 나름대로 자신이 정립한 기준으로 고유한 생각을 해본다는 교육 방식은 아이들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 주고 무한한 상상력을 갖도록 만든다.
단지 교육뿐이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수학자 선정 조사에서 늘 1등을 차지하는 인물이 뉴턴이다. 그는 명문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대학 생활에서 “끊임없는 밤샘 공부로 병에 걸렸다”는 사실만 기록에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뉴턴이 남긴 가장 유명한 책은 1687년에 발표한 ‘프린키피아(Principia)’.
이 책에서 그는 수학과 과학의 역사에서 찬사를 받은 3가지 법칙을 만들었다.
제1법칙은 ‘관성의 법칙’으로 모든 물체는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으면 주어진 성질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우리가 달리다가 한 번에 멈추지 못하는 게 관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가 밝혀냈다
제2법칙은 ‘중력의 법칙’으로 모든 물체는 지구 중심으로 떨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하늘을 향해 돌을 던지면 언젠가 땅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제3의 법칙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힘이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데 단단한 벽을 밀면 우리 몸도 반작용으로 밀리는 성질이 있는바 이게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가 명쾌하게 이해하는 이런 증명을 밝히기 위해 뉴턴은 하루에 18~19시간 동안 연구에 집중했는데 질문의 주제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깊이 사색하는 습관의 소유자였다. 덕분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영국의 기네스는 맥주회사로 유명하지만 세계기록을 인증하는 기관으로서 명성이 있다. 지구 상에서 무엇이든 색다르고 독창적인 것에 대한 평가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인류사회가 발전하는데 영국이 큰 기여를 한 대표적 국가의 하나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작가 해리 빙햄(Harry Bingham)은 영국이 인류사회에 기여한 요소들을 언어, 문학, 경제시스템, 사법체계, 의회제도, 복지제도, 과학, 기술, 문화, 생활방식 등 10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이런 요소들을 영국이 창의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켜 세계경영을 했고 국제사회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나름 근거가 있는 주장을 펼친다.
그래도 한 때 세계 1등 국가였는데 그게 우연히 이루어지기야 했을까.
‘깊이 사색하고 독창적으로 생각하라.’
그들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영국이 발전할 것임에 분명하다.
지루하고 맛없는 영국 맥주보다 더 밋밋한 국산 맥주를 마시면서도 우리는 시대정신이라는 유행성 레토릭에 너무 휩쓸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비아그라 성분이 첨가된 맥주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사진출처 :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