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격인 제임스는 늘 그 문제를 놓고 고민을 했었다. 게다가 여전히 목숨이 붙어 있는 닭이 피를 흘리면서 마을을 쏘다니다가 마당 한가운데서 쓰러져 죽기라도 하면 가까스로 잠자리를 허가한 족장의 체면은 물론 부족 사람들의 싸늘한 눈빛을 견디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를 심각한 문제였다. 탄자니아에서 국비 유학생으로 온 비아 뭉구에게 합류를 허락한다는 답신을 보낸 것도 어쩌면 꽤 훌륭한 판단을 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캠퍼스 구내식당에서 비아 뭉구가 달달하고 매콤한 양념 소스가 듬뿍 묻어 있는 닭다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순간을 목격했다는 증인들은 수없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이 포크와 나이프로 닭다리 거죽을 참새가 물 쪼아 먹듯이 깨죽거리는 것과 달리 그는 두 손가락으로 닭을 들고 살을 다 뜯어먹은 후에도 검은 손가락에 붙어 있는 양념까지 입안에 넣고 쪽쪽 빨아먹고는 하얀 손가락을 드러내는 등 기본부터 달랐던 것이다. 사실 그도 이번 일정에 꼭 참석하고 싶다는 의견을 수차례 편지나 메모를 통해 알려오지 않았던가. 더욱이 30박 31일 일정 중에 그를 대신해서 어디를 방문하든 마을 사람들과 친밀감 있게 대화를 하면서 요리에 쓸 생닭을 잡아올 수 있는 인물도 사실 없던 바였다.
그가 일행의 마지막 참가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긴 여행 계획이 실행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신청자 모두에게 골고루 퍼졌다.
주 운전과 보조 운전은 마크와 데비가 맡기로 했다. 마크는 런던에서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여전히 괴물이 출현하곤 한다는 네스호가 있는 인버네스까지 쉬지 않고 달려본 경험이 열 번이 넘을 거라며 손가락을 자신 있게 펴 보였다. 게다가 어떤 날은 다음날 수업 시간까지 돌아와야 해서 고향 집까지 왕복 26시간이 넘는 시간을 운전석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경우는 분명히 있지 않았느냐”는 심리학 전공인 살짝 까칠한 공동 리더 제인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점에서 마크는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데비는 운전 능력에 간단한 수준의 차 정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물리학과의 케인이 정비 전담자로 선정되어 합류가 결정됐지만 운전과 정비 두 가지의 필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은 데비가 여성인 데다가 몸이 너무 뚱뚱해서 차 밑으로 들어가 바퀴를 갈아 끼우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를 만족시켰다.
요리는 연극을 전공하는 일본에서 온 마꼬가 맡기로 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일본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 까닭에 아프리카에도 분명히 일본인 소유의 조그만 호텔 정도는 있을 거라는 점에다 그녀가 협상을 잘해서 하루쯤은 싼값에 호텔서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선정 배경이었다. 그리고 매일 서양식으로 먹는 음식이 지겨울 경우 그녀가 이국적인 음식으로 일행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은근한 기대도 한몫했는데 여행 기간 마꼬는 연극 전공자답게 다 불어 터진 인스턴트 카레 라멘을 맛있는 표정으로 잘도 먹어 댔다.
목적지를 찾는데 긴요한 지도 보기는 지질학 전공의 사이먼으로 정해졌는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2년째 유급했다는 사실과 영어 이외에는 독일어와 불어, 스페인어는 읽을 줄도 모른다는 점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의대 생 스미스는 조금 미심쩍기는 했지만 간단한 진료는 할 수 있다고 해서 합류가 결정됐는데 사실 의대 생 중에 한 달 이상을 싫건 놀겠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경 통과 시에 발생할 대외 섭외 업무는 역사학 전공의 프란시스가 맡기로 했다. 그는 취리히와 베를린에서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보다 어린 시절에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나이지리아와 잠비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웃으면서 대화하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를 현지인들과의 물리적 충돌에 대비해서는 브라질 유수 대표 선수 출신인 로마리오 만한 후보자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앞두고 벌어진 축제에서 여학생 10명이 타고 있는 <오스틴 미니> 승용차를 두 손으로 20미터를 끌어당겨 그해에 학생회가 선정한 최우수 차력사 상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미팅을 갖던 날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3년째 같은 여행을 반복하고 있는 리더 격인 경제 학도 제임스는 5년째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언젠가 대학을 졸업하면 《제임스 쿡》 같은 여행사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 제임스는 다소 까다로워 보이는 질문에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그게 무슨 심각한 문제냐는 표정으로 단번에 답변을 해서 리더로서의 신뢰감을 한층 높였다.
프랑스에서 온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진 얌전한 얼굴의 마리는 씻는 문제에 대해 거듭 질문을 했다. 31일 일정 중에 세면과 샤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대부분 여학생들은 그 질문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공감하는 표정으로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강가를 수없이 건너게 될 텐데 악어가 없는 곳에서는 수영과 샤워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게 제임스의 답이었다. 가끔씩은 시내를 관통하기도 하는데 호텔 부근에 차를 주차해 놓을 테니 투숙객인 것처럼 가장하고 호텔로 들어가 중앙 로비 좌우 편에 분명히 있을 화장실에서 서둘러 세면 하는 것도 좋을 거라는 그의 유익한 정보에 여학생들은 귀중한 정보라는 듯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식사는 이동 중에 요리 담당이, 차는 펑크가 나지 않은 한은 며칠이고 쉬지 않고 달리게 될 거라고 그가 덧붙였다. 차에서 먹고 자는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 간단히 연주할 줄 아는 악기 정도는 가져오거나 놀이를 위한 카드도 필수라는 점, 그리고 전공 서적은 아니지만 읽을거리는 개인적으로 가져와서 다 읽은 다음에 서로 돌려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여가 담당은 이태리에서 온 파올로가 선정됐는데 합류 조건으로 푸치니와 베르디의 웬만한 곡은 다 준비해야 할 거라는 요구를 그는 이태리 출신답게 거침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결국 31일 동안 매일 노래를 불러 댔는데 성대 결절의 위험성에 대해서 의대생 스미스는 늘 “아직은 괜찮다”라고 처방을 내렸다.
아주 오래전, 긴 여름 방학을 맞는 유럽 학생들은 이렇게 아프리카나 남미 여행을 했다. 비록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세상을 경험하려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꿈을 실현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총동원했다. 목적지인 대륙에 처음 도착해서 개조한 큰 버스(대개 낡은 2층 버스였는데)에 올라타서는 한 달여 대륙을 종단하거나 횡단하는 여행을 하며 젊은 시절의 추억을 소중히 하며 열정을 만끽했는데 각자 재능을 살려 역할을 충실히 하는 까닭에 아주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여행이 가능했다.
오늘날 국경을 허문 유럽 통합은 비록 국경은 존재하지만 이웃 국가나 국민들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인식상의 ’ 인접성’과 종족과 언어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백인이고 기독교 문화권이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의 이념을 공유한다는 ‘동질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속에서 유럽의 젊은이들은 더 나은 세상, 더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을 추구하고자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더 나은 유럽을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제, 빈약한 리더십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유럽의 과거와 오늘을 살펴보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자리하고 있는 동아시아에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일본은 인접 국가와 과거사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선진 국가라는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중국은 보편적 인권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몽’의 허황된 꿈을 꾸며 대국을 자랑하고 있다. 어디 그들뿐 이랴.
오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이미 한 세대 전 유럽의 젊은이들이 만끽하던 젊음의 특권은커녕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딱하다는 말밖에는 위로해줄 말이 없는 허망한 현실이다. 자유롭게 그들이 꿈꾸던 날이 불현듯 찾아올까. 오랜 전 만났던 유럽 청년들의 모험 정신이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오롯이 전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