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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Oct 23. 2021

어머니는 내게 누구인가?

딸아이 하나를 둔 나는 만날 때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를 늘 웃어넘기곤 했다. 노모는 외롭게 자랄 아이가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 이화고녀를 나온 어머니는 당시 관습에 의해 재능과 집안의 배경을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평범한 주부로 평생을 살았다. 무책임하고 원만하지 않은 성격의 아버지는 그냥 존재했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먹이고 뒷바라지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했다.


당신의 약한 몸으로 제대로 수유를 하지 못하던 아들에게 염소의 젖을 먹였다며 평생을 미안해하시고, 매년 겨울 김장철이 되면 멀리 떠난 아들이 좋아하는 배추 속을 버무리며 10년이 넘는 겨울마다 속울음을 하셨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반이던 시절,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미뤄둔 등록금을 내지 못해 졸업마저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깊이 보관하고 있던 결혼반지마저 처분했다. 


어머니는 “걱정 말아. 나중에 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면 다시 선물 받으면 되지”라며 어린 아들을 위로했다. 그때 이후 나는 늘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에게 꼭 반지를 선물해 드리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외국에서 오랜 고생 끝에 학업을 마치던 날 어머니로부터 국제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내게 “아드님, 장하네.” 이 말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오랜 시간 아들을 품었던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딸아이는 취업해 직장생활을 했다. 어려서는 햄스터며 금붕어며 강아지를 집으로 가져오더니 몇 해 사회생활을 하던 아이는 어느 날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고 조금 이른 나이지만 나는 아이의 결혼을 허락했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말 설고 낯 설은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아이는 혼자 자라면서 늘 외로움이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소속되어 있던 기관에서 좌파 교수로 매도되면서 일 년 이상을 강의에서 배제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오랜 기간을 같이 지내던 동료들 대부분이 해가 넘도록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낯설고 말 설은 것을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인심의 냉혹함을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체험한 셈이다. 참 힘든 시기였다. 


속사정을 알길 없는 어머니지만 아들의 표정을 읽고는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아들은 품성은 선하지만 성격이 곧아서 힘든 일이 많을 거야. 몸을 잘 추스르며 견디다 보면 때가 올 거야. 잘 이겨내셔야지.” 어머니의 이 말을 새기며 울분으로 상한 몸을 10개월을 진통제를 먹으며 견뎠다.


딸아이가 출산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있던 짧은 기간, 노모는 아들을 위로하면서 “빨리 나아서 집으로 가야지”라는 말을 다짐처럼 되뇌었다.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노모는 마침내 의식을 잃었고 어머니가 의식을 잃던 그날 딸아이는 아이를 출산했다. 노모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다시 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그것도 운명인가 보다.


“아들, 내가 먼저 가니 너무 슬퍼말고 아이와 재밌게 지내다 다시 만나세.”


노모를 보내고 슬퍼할 자식을 위해 가까스로 의식을 지탱하다 마침내 당신의 생을 포기하고는 천사를 선물해 주고 떠나신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지낸다.


여린 봄꽃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예뻐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가을에 노모가 좋아하던 옅은 홍색의 단감이 가게마다 즐비할 때면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말랑한 감을 씻을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입에 넣을 때마다 목이 메곤 했다. 


멀리 하늘에 떠 있는 별 중에 하나가 어머니라면 매일 그 별을 보며 절을 하고 싶다. 철없는 아들이 나이 들어 이렇게 그리워하는 줄 먼 곳에서 아실까. 내 남은 생의 반을 가져가더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로 어수선했던 2020년이 어느새 가더니 2021년도 가을이 깊어간다. 어머니가 떠나신 날이 돌아오는 건 내겐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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