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지병을 치료 중이던 친구는 병이 아닌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나중에 유품을 정리하던 가족이 처방받은 우울증 약 꾸러미가 사용되지 않은 걸 발견하고 나서야 진실이 밝혀졌다. 자존심 강하고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던 친구는 우울증 약까지 복용해야 하는 현실이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남자도 우울증과 갱년기를 경험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흔히 중년기에 생기는 갱년기와 우울증은 남자들에게 당연히 찾아온다. 문제는 여성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지 않는 까닭에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우울증 증세로 고생하는 남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증세를 부정하거나 위장하곤 하는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90%가 우울증을 앓는다는 통계를 보면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의 자살률은 여자의 비율을 훨씬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나이 많은 중장년의 자살 가운데 남자의 비율이 81%로 여자에 비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의 이유로는 4가지 주요 원인을 꼽는데 우울증, 알코올 중독, 사회적 고립감, 그리고 육체적 질병 등이 그것이며 그중 우울증이 나머지 3가지 요인에 앞선 자살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자들이 중년에 들어서면서 경험하게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있다. 부모의 사망,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의식, 경쟁에서 뒤처지는 열등감, 일자리의 상실, 동료나 친구의 죽음, 아이들의 독립, 그리고 때론 이혼. 하나같이 희망보다는 절망을, 선택보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사건들이다. (물론 여성들에게도 해당되는 사건들이기도 하지만 남자들의 관점에서 보기로 한다).
아이들의 독립도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품 안에서 떠나가 더 이상 가족 간 연대의 끈끈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 사실 남자들에겐 더 크다. 이러한 상실감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신체적인 변화의 요인들과 결합해서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50대 이상이 겪는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사망, 친구의 죽음, 오랜 기간 몸담았던 일터에서의 일자리 상실, 혹은 현역에서 은퇴하는 사건들에 의해 유발되는 우울 증세는 예방 조치나 적극적인 대응으로 병적인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우울증은 남자들이 걸리는 모든 정신적 질병 가운데 가장 치료가 쉬운 병인데 90%가량은 병원에 가지 않고도 심리 치료나 약물 복용에 의해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다만 초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증세를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심각한 우울증 증세로 고생하는 남자들은 60대가 될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증세를 부정하거나 위장하는 태도를 갖는다.
남자들과는 반대로 여자들은 우울증에 앞서 찾아온 갱년기 증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부분 여성들은 갱년기를 자신의 생에서 벌어진 엄청난 충격이 되는 사건으로 간주한다. 사실 특정한 증세를 대하는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다.
여성들은 갱년기가 오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현재의 불만족,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반추하고 고민하며 스스로 어려운 시기임을 인식한다. 또한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놓고 극복할 방법을 다 같이 찾아보자는 식으로 전선을 확대한다.
게다가 여자들은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도 남자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해소를 잘한다. 여성의 갱년기는 홍조, 성 장애 요인 등 일부 신체적 변화와 심리적 요인을 제외하고는 남자들의 증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갱년기는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각한 증상이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남자들은 그런 증상을 대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남자가 생애주기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후유증이 그 원인이 아닐까?
아이 시절 사내는 울지 말아야 한다고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다. 한국 남자들은 군복을 입는 순간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군 생활을 통해 악몽 같은 상황을 육체적으로 견뎌내는 경험을 한다. 그곳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지지만 이겨낼 수 있다고 반복적인 자기 최면을 건다. 직장에서의 책임감,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으로 인해 직장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묵묵히 견뎌내려고 애를 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통과 어려움을 스스로 감당하고 견뎌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뜨거운 여름에 뙤약볕 아래에서 유격훈련을 받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훈련기간 새벽부터 깜깜한 밤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과 기합의 순간들을 몸으로 견뎌야 했다. 한 겨울 천리행군을 할 때면 매서운 추위 속에 30kg가 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행군을 하고 눈 덮인 계곡에서 잠을 자면서 피범벅이 된 군화 속 발이 얼어붙지 않도록 꽁꽁 언 손으로 틈나는 대로 문지르곤 했다.
그 시절 젊은 청춘들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자는 욕구조차 ‘악으로 깡으로’ 견뎌야 했다. 그 기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저기 군인이 간다”는 지칭의 대상이 되었던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들에게 가해진 심리적 충격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회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은 대개 남자가 감당하는 게 당연시되었다. 직장에서도 남자들이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은 수없이 찾아온다.
몇 해 전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에서 명퇴를 거부하는 직원에게 출근해서 온종일 면벽하게 하는 기사가 보도되어 공분을 산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신문도 책도 읽지 못하고 인터넷이나 사적인 개인전화 사용도 금지됐다. 출근해서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 퇴근할 때까지 책상에 앉아 앞만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그가 느꼈을 심리적 동요와 갈등은 어땠을까?
그도 누군가의 똑똑한 아들이었고 든든한 남편이며 자랑스러운 아빠였을 것이다. 그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멸감을 견뎌내는 마음이 어땠을까. 어디 그뿐이겠는가. 일찍이 이런 과정을 경험한 까닭에 남자들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우울증과 갱년기 증세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갱년기를 보내도 여성은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가정과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빈번한 호소의 결과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이와는 반대로 남자들의 갱년기 증세는 터놓고 얘기하는 문화가 아직 성숙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다양한 자극에 대해 여자들처럼 감정적 반응을 잘 나타내지 않고 감정적 표현을 내부에서 억제하려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한 충격이 더 크다. 그런 까닭에 남자들의 갱년기는 더욱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전하고 자살률의 증가와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남자들의 비율이 여성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이 시점에 우리 사회도 남자들의 우울증과 갱년기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대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차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