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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Oct 29. 2021

평강공주를 꿈꾸는 여성들


귀한 집안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반듯하게 자란 여인이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천한 신분의 남자를 만나 결국에는 훌륭한 인물로 만든다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에만 등장하는 줄 알았다. 성장하면서 보니 만나본 대부분 여성들은 그 이야기에 가당치 않다는 표정을 짓거나 ‘전설의 고향’ 소재로도 써먹을 일없는 쓸데없는 얘기라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런 여성들의 지적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공감을 했다. 게다가 조금 미안하기까지 한 것은 그 감동적인 스토리에서는 바보를 멀쩡한 인물로 키우기(?)까지 온갖 어려움을 감수한 평강공주의 희생을 묘사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조금 야박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 성공스토리에서는 남자의 성공보다 그것을 만들어낸 여성의 눈물 어린 애달픈 노력이 더 평가받아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게 소심하지만 내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좀처럼 평강공주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드라마조차 고시 공부하는 남자를 위해 힘들게 직장을 다니며 자신을 희생한 여성이 결국에는 배반당하고 마침내 절치부심 끝에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해피엔딩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들 대부분이 여성인 드라마에서 복수극들이 횡행하면서 현대판 평강공주의 사례를 찾기 힘들어진 것도 아쉽지만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현대판 평강공주가 곳곳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희생하며 남자 친구를, 남편을, 또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시골에서 일거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여성들은 늘 자신을 희생하며 오빠나 남동생, 그리고 일찍 결혼한 여성들은 남편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오늘날 성공한 남자들 중에는 공장에 취직해 온종일은 물론 밤늦은 시간까지, 또 주말에도 휴일 없이 고된 일을 하며 자신을 지원해준 누이의 희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평생을 갚고 살아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들의 눈물 어린 고귀한 희생이다.





A는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이던 아버지와 남편만 바라보며 집안 살림만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성장했다. 아버지가 평생을 지방의 학교만 전전하였던 까닭에 고등학교는 큰언니 식구가 있는 서울에서 졸업하였고 직장을 다니다가 마침내 공부할 여건이 되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부모님을 모시며 국어전공으로 사범대학을 다녔다.


독서하는 취미에다 글 쓰는데도 재주가 있어 재학 중에 많은 습작을 했고 문학상도 수상을 했다. 졸업 시에는 전체 수석졸업을 하였고 임용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아버지처럼 학교 선생이 되었다. 교직이라는 바라던 일을 성취했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도도 높아 다가올 앞날은 행복할 거라는 상상의 날개를 펴곤 했다.


그러던 그녀 앞에 어느 날 온달이 나타났다. 우연히 만나게 된 같은 대학의 복학생 하나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가 부친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떠났고 그 후 어머니를 원망하며 목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숨죽이며 살았다. 아버지는 재혼을 해서 이복동생들이 태어났고 어린 동생들에 대한 친부의 편애와 새어머니의 간섭과 구박으로 그는 점점 반항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의 성장과정은 그녀에게 전혀 낯선 이야기로 들렸고 그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으며 자신이 그의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은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했으며 결국 결혼에 앞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혼전 임신이라는 당시 현실과 세간의 인식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그토록 갈망했던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참하고 재주 있던 막내딸의 임신 소식과 학교마저 스스로 떠나야 했던 현실로 실망이 컸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라 실망은 더 컸으리라. 


남편이 여전히 학업을 지속해야 하는 현실, 또 아이를 낳아 양육해야 하는 현실로 인해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5남매의 막내딸로 곱게 자랐던 그녀를 붙잡은 것은 ‘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였다. 모든 가정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희생해야 했으니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지 상상이 된다.


공대에 재학 중이던 남편은 마침 결원이 생긴 치의대로 편입을 했고 공부 기간은 더 늘어났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끊임없이 일을 찾았고 남편이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몇 차례 재수 끝에 남편은 드디어 시험에 합격했고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고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오는가 하던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남편의 폭력으로 일그러졌다. 전에도 남편은 술을 빌어 종종 폭력을 했다. 그때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때는 오히려 남편이 불쌍하게 느껴져 아이를 감싸고 몸으로 폭력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남편의 술자리가 더 빈번해지면서 폭력은 도를 더했고 동네는 물론 인근 지구대에서도 남편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만 참고 견디자는 그녀의 진심은 남편에게는 어머니에 이어 자신을 떠나려는 또 다른 여인의 속셈으로 해석되었다.


그녀의 몸은 어느덧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랜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육체적 고통이 원인이 된 지병은 회복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서지 않는 한 그녀의 삶은 구제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성장한 남매는 엄마가 너무 큰 희생을 치렀다며 아빠와 결별하고 홀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을 강권하지만 그녀는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녀는 치료를 위해 평생 다녀야 할 병원을 가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B는 요즘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릴 적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동생들만 넷이 있던 까닭에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제대로 입고 쓴 것이 없을 정도였다. 희생은 늘 그녀의 몫이었다. 부모는 그런 그녀의 태도를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학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겨우 중학교만 졸업한 그녀는 한마디 불평 없이 집안일과 동생들을 돌보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병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농사와 가정 일을 도맡았던 그녀는 그나마 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처럼 대견했다. 자연스럽게 남동생 셋은 서울로 유학을 떠났고 아버지는 전답을 조금씩 정리해 가며 동생들의 유학비를 충당했다. 겨우 남은 논밭이 가족들의 터전이 되었고 거기서 지어낸 농산물들이 시골의 가족은 몰론 서울로 떠난 동생들의 식량이 되었다. 서울서 공부하던 동생들은 다들 제 몫을 다해 대학을 졸업하고는 모두 직장에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차례로 결혼을 하며 서울에 정착했다. 동생들이 결혼을 할 때마다 집에서 관리하던 논밭은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녀의 가족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건 차츰 농촌이 도시화되는 개발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 무렵 온통 논밭이던 집 주변 마을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시작되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더니 그녀의 고향은 더 이상 죽은 사람들에게만 안락한 지역이 아니었다. 어릴 적만 해도 웬만해서는 서울로 나가는 교통편이 별로 없더니 어느새 집들이 들어서고 차량이 덩달아 많아지며 이제는 마을의 공기조차 어릴 적 동네 바깥에서 흔히 맡던 냄새가 아니었다. 





그녀는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남편과 함께 부모가 남겨준 약간의 전답을 갖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아버지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났고 홀몸이 된 어머니 수발은 또다시 자연스럽게 그녀의 몫이 되었다. 아이들조차 제 어머니의 삶을 기구하다고 말하곤 했다. 얼마 전부터 동생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시골에 남은 전답을 정리하자고 어머니를 조른다.


천정부지로 오른 지역 땅값으로 오래전 자신들이 받았던 몫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어머니는 넋두리 삼아 중얼거린다. 자신을 배려하는 듯한 아들들의 말에 어머니조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듯한 명분이야 이해가 되지만 그녀는 내심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순수하던 시절, 평강 공주는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공을 되돌려 받았지만 오늘날 평강공주들은 몰염치한 온달들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다. 어릴 적 책을 읽으며 감동이 넘치던 동화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왜 오늘의 평강공주들에게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며 마무리하게 만드는 것일까. 

온달들이 너무 영악해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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