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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Oct 26. 2021

남자가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유


사람은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부쩍 자라고 연인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더 어른이 된다. 나이 들어서도 부모가 그리운 것은 자라면서 받았던 사랑이 그리운 까닭이다. 


여성이라고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자들은 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것을 느낀다. 그것은 감정표현이 서툰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아들로부터가 아니라 할머니, 어머니, 딸과 같이 감정이 섬세하거나 정이 물씬 풍기는 대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진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 남편을 제외하고 할아버지나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평생 기억한다는 얘기는 흔한 사례는 아니다. 요즘에는 조금 달라져서 딸들은 비록 투박했지만 아버지가 준 사랑을 오랫동안 기억하기도 한다. 





남자의 사랑은 부모나 혹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산 아내보다 딸에 대한 사랑이 더 감성적이고 지극하기 때문이다. 딸의 결혼식장에서 종종 눈물을 흘리는 남자를 보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친구 하나는 딸의 결혼식 날 예식장을 찾은 친구들은 물론 하객들로부터 ‘달팽이 입장’이라는 놀림을 오랫동안 받았다. 사회자의 ‘신부 입장’ 구령에 맞춰 딸의 손을 잡고 식장을 행진하는데 달팽이처럼 늦게 걸어 들어가서 생긴 놀림이었다. 


순리에 따라 애지중지 키운 딸을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보내야 하는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말을 전하면서 그는 진한 눈물을 쏟았다. 결혼식장에서 종종 ‘거북이 행진’이나 ‘달팽이 행진’을 보고 왔다는 후일담이 공연히 나온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절절한 탓이다. 





여성의 감정 표현은 남자가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있다. 따라서 여성이 사랑하는 아이들과 연인, 그리고 부모에 대해 보여준 사랑의 감정과 표현은 그 대상에겐 쉽게 잊기 어려운 추억을 남긴다. 그런 까닭에, 살면서 여성들의 사랑 속에서 성장한 남자들은 늘 사랑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가 유독 아내로부터는 사랑이 변하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대다수 여성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의 사랑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여성이 자라면서 느꼈던 사랑의 정도와 남자의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경에서 차이가 있는 까닭에 남자가 느끼는 감정적 충격은 더 심각하다. 


아내와의 대화가 소원해진 남자는 늘 대화를 목말라한다. 남자는 가장으로,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다. 그러나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생각이 없는 아내를 남자는 대화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자는 아내에게만큼은 가장으로서 체면이나 자존감이 무너지는 얘깃거리를 말하고 싶지 않다.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받은 모멸감, 동료와의 경쟁에서 낙오한 얘기, 여자에게는 시댁이 되는 자신의 집안문제, 아내와의 불만, 불확실한 장래와 같은 얘깃거리는 남자가 아내와의 대화에서 꺼내고 싶지 않은 소재들이다. 서로 대화의 결이 다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도 출구는 필요하다. 


여자들은 종종 남자가 단골로 다니는 술집의 주인이나 종업원, 심지어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낯선 대상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고민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듯 얘기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심지어 오랜 시간을 같이 산 자신도 모르는 남자의 얘기를 타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남자에게 이런 현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남자는 그저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대화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다. 





남자는 상대가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때 어릴 적 할머니나 어머니가 응석받아주듯이 자신의 얘길 들으며 무조건 자신의 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정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나 아내와의 대화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내와의 대화는 논리와 이성적 전개가 필요한데 남자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자는 종종 아내가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간섭하며 무시한다고 느낀다. 따라서 술집이나 카페에서 만난 누군가가 비록 경제적 이해로 인해 진지하게 들어주는 표정과 태도를 보일지라도 거기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남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세대를 불문한다. 오늘날 남자가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강박관념은 사실 한국사회 유교주의 문화가 가져온 병폐의 후유증이다.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의 잔재인 것이다. 


오래전 농경사회에서는 주거마련과 생존의 수단이 되는 도구로 남자의 역할이 필요했다. 또 외부세력의 침략으로부터 공동체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가족 구성원들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지켜야 할 유용한 활용 수단으로 필요한 존재가 바로 남자였다. 가정에서는 조상 제사를 지내야 하는 제주로서의 역할도 그 존재의 의미가 있었다. 





오늘날 변화한 사회 속에서 이런 전통적인 남자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한 것일까.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이 예전과 다르다곤 하지만 오늘날 어머니들은 여전히 아들에 큰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으며 남자들은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런 까닭에 오늘도 관심 속에서 사랑에 목말라하는 습관을 가진 남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관심이 담긴 사랑을 그리워하는 남자의 습관은 사실 여자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성장해서도 관심과 응석을 요구하는 남자들에게 지친 여성들에게 앞으로는 아들 딸 구별 없이 객관적이고 평등하게 자식을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이제는 가능할까. 


오늘도 여성들이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찾아 들판을 거닐 때 많은 남성들은 보이지 않는 기억 속의 사랑을 그리며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졸고에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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