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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Feb 08. 2020

자유와 낭만을 갈망하는 자여, 이리 와 함께 춤을 추자

영화 <조조 래빗>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


조조 래빗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살아가는 구조 속 개인들을 살펴본 드라마 영화다. 어떠한 검색엔진이든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라고 표명해두었지만, 실제로는 좀 다르다. 영화를 꽉 채우고 있는 원색적 영상미와 그 속을 이루는 나치 독일의 잔혹함은 코미디 영화라기 보단 마치 한 편의 슬픈 동화 같다. 영화는 나치 독일 시대의 참혹함과 세계 대전 말기의 현실과 같은 역사적 측면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지만, 필자는 '시대와 예술의 접목'이란 입장에서 접근해보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 독일인들은 유대인을 향한 혐오로 포장되어있으며 시와 예술, 자유는 철저하게 억압당해진 일률적 상태로 묘사된다.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나치 독일을 대표하는 인간 군상으로, 쓸데없는 시간은 소모하지 않으려 하며 할아버지가 금발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조조는 독일을 위해 희생할 군인이 되길 바라며 그림을 그리는 유희 또한 유대인을 비하할 목적으로 이용한다. 제목에 나와있는 '래빗'은 조조가 군인이 되기엔 토끼같이 약하다는 하나의 메타포로,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의 허상(종족과 힘의 우열 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조조의 집에 살고 있는 의문의 유대인 여성 엘사(토마신 멕켄지)는 조조로 대표되는 나치 독일과 정확히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다. 엘사는 자신의 옛사랑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릴케의 시를 함께 읊던 그 황혼의 시간을 반추해낸다. 이러한 엘사의 모습에 대해 반감을 갖던 조조는 점차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고, 릴케의 시를 직접 찾아보기도 한다.


엘사는 "자유를 되찾게 되면 무엇부터 하고 싶냐"는 조조의 질문에 "Dance(춤)"라 대답한다. 그녀에게 인생이란 연인과 재회하여 다시 사랑하고 같이 밤새 춤을 추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일련의 순간을 뜻하는 것이었다. 유대인을 비아냥 거리는 태도가 몸에 베여있던 조조조차, 엘사가 춤을 추겠단 말에 그대로 순응하고 예술적 자아로써의 그녀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끝내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여기 또 한 명의 낭만 예찬자가 있다. 바로 조조의 엄마인 로지(스칼렛 요한슨)다. 조조의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툭하면 힘이 센 군인이 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조조에게 젊음이란 그저 '춤을 추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특히 전장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조조 앞에서 그대로 따라 하는 장면은 그녀가 시대적 억압에 대한 비애를 울분 속에서 연기로 표현함과 동시에, 예술적 자의식을 표출해야만 살 수 있는 로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씬이다.


"한 번 사는 인생 호랑이의 눈 따위 빤히 쳐다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자유'와 '사랑'에 두고 그렇게 충실히 '할 일을 했다'. 엘사가 조조에게 낭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미적 모습을 일깨워줬다면, 로지는 조조에게 '사랑의 힘'을 알려줬다.

"사랑에 빠지면 배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지."

로지의 '나비' 은유는 영화를 가득 채운 인간의 연약한 예술적 감성을 대표하는 심벌이자, 조조가 주인공으로써 성장을 하도록 돕는 장치이기도 하다.


시를 이해하고, 달을 보고 밤새 떠들기도 하며, 사랑이란 감정에 지배까지 당해본 조조는 점차 나치 독일의 환상을 잊어간다. 매일 같이 자신을 찾아오던 '허구 히틀러'는 점차 착한 아저씨의 상냥함을 벗고 본색을 보이기 시작한다. 조조가 엘사와 가까워질수록 허구 히틀러는 조조를 더 못살게 굴며 그녀가 말해주는 모든 걸 부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조조는 점차 '래빗'인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며 세상을 아이로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조조의 주변을 서성이는 묘령의 여인들, 그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같았지만, 결과적으론 가장 사람다웠다. 자유를 열망했고, 전쟁 없는 평화를 기다렸고, 맘껏 웃으며 '춤추는' 인생을 원했다. 도구를 넘어서 인간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인 시와 열정, 아름다움을 나치 독일 시대를 풀어가는 소재로 잡은 감독의 생각은 유려했다. 인간은 행복하면 그만이고 감정에 지배되는 동물이다. 종족 간 등급을 나누고 여성은 아이를 낳는 기계로 취급하며, 남성은 전장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던 그때 그 시절의 암흑기. 어두운 밤을 살던 사람들은 종국엔 행복해지는 법을 릴케로써, 이상으로써, 터득해야만 했다.


그렇게 영화는 명령문으로만 채워져 있던 이 광기의 시기를 아름다운 색들로 덧칠해버린 후, 끝내 관객들에게 조심스러운 권유를 건넨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추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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