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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Feb 08. 2020

권위에서 벗어날 때, 소년은 비로소 아버지가 된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동양 문화권에선 '아버지'란 존재를 어렵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가부장적 질서가 고착된 동양에선 아버지가 엄격함을 담당해야만 했고, 엄마와는 다른 무서운 호랑이 역할을 자처해야했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그렇게 자라왔고 그렇게 배워왔다. 필자는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이러한 가부장적 '자존심'이 가정 내에선 불필요한 점이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물론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감을 지는 건 공감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이러한 것들이 결국 자식과의 단절을 자초해왔기 때문이다. 친근감이 아닌 위압감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그다지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이 한참 바빠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 딸이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라고 말한 것에 충격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가장이라는 구조적, 사회적 롤(role)이 그들을 계속 집이 아닌 밖에서 방황하게 만들고 가정에 소홀하게 만드는 문제는, 최근이 되어서야 많은 이들이 자각하고 있다. 그 전엔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없었던 것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알고보니 '친자가 바뀌었다'는 불미스러운 사건 속에서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 가는 개인적 성장을 그려낸 수작이다. 특히 친자가 바뀐 막장이라고 볼 수도 있는 소재를 신파가 아닌, 잔잔하고 단단하게 끝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료타는 국내 굴지의 기업에 다니며 유복한 중산층으로서 부인과 함께 아들 케이타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성격 탓인지 아들에게도 성과를 중시하고 엄격한 가정교육을 시킨다. 그러다 우연히 받게 된 병원의 전화를 통해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 부인과 함께 당혹감에 빠진다. 료타는 이때도 "역시 아니였군.." 이란 반응으로 케이타가 아들로서 자신의 뜻대로 잘나지 않자 실망했었다는 차가운 속내를 내비치게 된다.


실제 케이타의 부모인 유다이 부부를 만나게 된 료타 부부는 궁핍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불편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과 함께 씻고, 시간이 날 때마다 놀아주는 유다이를 보며 무언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료타가 낮잠을 자다가 케이타가 만들어준 수수깡 꽃대를 보고 사라진 종이 장미를 '찾는' 씬은 계속된 유다이 부모와의 교류를 통해 그가 아이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지 점차 깨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가다 후반부에 감정적 한 방을 날린다. 료타가 무심코 본 카메라엔 온통 케이타가 자신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자신은 잠을 자고 있거나 TV를 보던 뒷모습인 채였다. 우리가 아는 유교적 관념 속 아버지의 모습과 어딘가 많이 닮아있는 사진 속 료타들은, 아이에게 항상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선 잘 볼 수 없고, 소통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큰 산 같은 아버지. 6살 소년 케이타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자신을 료타의 아들로서 인식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의 '소속품' 정도로만 자신을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료타가 케이타에게 보인 6년은 '권위적인 아버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묘사되는 료타와 케이타의 동선 변화는 이러한 아버지의 권위주의를 끝내 부수고 있다. 두개로 나뉜 갈림길에서 료타는 처음으로 케이타보다 밑에 위치한다. 항상 케이타를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는 밑에서 아들을 올려다보며 "미안해"라 몇번을 외친다. 료타의 그러한 탈권위적인 행동이 흘러가다 보면, 결국 부자는 갈림길이 하나로 모아지는 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 겉만 아빠였던 한 소년은 비로소 그 갈림길이 끝난 곳에서 '아버지'가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영화 초반에 '돈이 많은' 료타가 친아들과 케이타 모두를 당연히 데려가야 한다고 동조하는 관객 스스로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가족 구조에 있어 폐쇄적으로 배워왔는지 반성할 수 있도록 만든다.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버지는 돈이 많지만 무신경한 아버지보단, 평범해도 나와 함께함을 마음 속으로 느끼게 해주는 동반자 같은 아버지일 것이다. 평범하기에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아버지, 그것이 우리에게 가족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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