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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Mar 09. 2020

법정드라마 장르를 낯설게 하다, '칠드런 액트'

<칠드런 액트>는 <어톤먼트>와 <체실 비치에서>를 쓴 '이언 맥큐언'의 열세 번째 장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출신의 영국 국민배우 엠마 톰슨이 주인공으로 활약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남자 주인공으로는 <덩케르크>에서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었던 핀 화이트헤드가 출연하여 또한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컷     © 왓챠 이미지

<칠드런 액트>는 겉으론 단순한 법정 휴먼 드라마인 것처럼 보이지만, 맥큐언의 어느 작품들처럼 실제로는 인생에는 정답이 없음을, 때로는 믿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거나 잘못된 방향을 향했음을 내포하고 있다. 초반엔 주인공이자 존경 받는 판사인 피오나(엠마 톰슨)의 일과 가정 사이의 위태로운 일상을 비춰줌으로써, 한 판사로서 살아가는 사생활을 보여준다. 그녀는 워커홀릭으로 남편과의 불화를 피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피오나는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영화는 중반에 이르러 피오나가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의 사건을 맡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애덤은 여호와의 증인을 종교로 가진 집안의 아들로, 그 역시 독실한 신자다. 백혈병에 걸리게 된 애덤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치료에 필요한 피 수혈을 거부하고, 이에 병원은 법원에 치료를 허가해 달라고 판결을 요청하게 된다. 이 사건의 판결을 맡게 된 피오나는 정확하고 존엄한 선택을 위해 애덤을 직접 찾아가게 된다. 둘의 병실에서 서로의 신념을 언어로 주고받기도 하고, 애덤의 기타에 맞춰 피오나가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피오나는 애덤의 종교적 믿음보다 생명권이 최우선이라 말하며 병원 측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다.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컷     © 왓챠 이미지

아마 여타의 다른 법정물이었다면 병원 측이 승소하는 장면에서 끝이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칠드런 액트>의 '진짜' 내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애덤의 ‘신’을 향한 신념이 ‘피오나’라는 판사에게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피오나에 대한 존경을 넘어 숭배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애덤의 적극적인 공세로 둘의 관계는 애매해져만 가고, 시종일관 냉철함과 이성을 놓치 않았던 피오나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매큐언 특유의 ‘낯설게 하기’가 잘 녹여져 있다. 매큐언은 가장 중립적이고 정의롭다고 전해지는 법 체계를 소재로 하여, 그 안에서 정념이란 예상치 못한 감정에 무너져 내리는 판사의 무기력함을 표현했다. 관객들은 피오나와 애덤의 관계를 통해 긴장감을 느낌과 동시에, 법정 휴먼 드라마라는 장르를 잊고 ‘진정한 신념’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에 다가가게 된다.



좋은 영화는 끝난 후에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라는 말이 있듯이 <칠드런 액트>는 유능한 여성의 삶이라는 인물적 측면, 종교와 과학이라는 오래된 인류학적 논쟁, 그리고 연민과 사랑 사이의 알 수 없는 감정 영역까지 복합적으로 그려내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장르적 관습이 고착화되어 뻔한 플롯의 작품들이 '대량 생산'되는 요즘, <칠드런 액트>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 법정 장르 내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한 수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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